조금은 특별한 우리집 동치미
자고로 동치미란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과 허여멀건 국물에 사각진 모양인데, 우리집 동치미는 조금 특별하다. 다른 동치미보다 국물이 맑고 시큼한 맛도 덜한데 살짝 얼얼하면서 기분 좋게 입안에 감도는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 그리고 아담하고 귀여운 부채꼴 모양이다.
할머니의 손맛으로 탄생한 우리집 동치미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그 손맛을 맛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빠가 매년 담그시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사랑하는 딸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시는 딸바보이신데, 평소엔 조금 무뚝뚝하고 무서운 인상을 가지셨다. 나는 그런 아빠가 엉엉 우는 모습을 단 한 번 본 적이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처음 보는 아빠 모습이라서 난 너무 당황스러워 못 본 채하고 도망갔고 그 뒤론 아빠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후에도 아빠가 말씀하시는 할머니 이야기는 많이 그리워하시며 회상하시는 말들 뿐이셨다. 그만큼 아빠한테 가장 소중한 존재, 안식처가 할머니 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간이 좀 흐르고 어느 날, 아빠가 동치미를 만들어 주셔서 먹어보라고 하셨다.
이때도 분명 내가 어릴 때였지만, 이렇게 할머니표 동치미 맛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니 아빠가 할머니를 항상 기억하고 있다는게 느껴졌고 그 특별한 동치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다. 조금 맛없게 담가진 해는 아빠가 속상해 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해가 지날수록 내 머리는 점점 커졌고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사춘기와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나는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힘겨워 아무것도 못하는 폐인이 될 거 같은데, 이제는 부모님이 모두 같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빠는 어떻게 그걸 견디고 살아가나 문득 궁금해져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립고 사랑하는 마음이 떠오르면 동치미를 만들었듯 할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을 회상하시는거 구나.
난 이 때의 아빠의 말이 가슴에서 맴돈다. 만나서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아도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걸 알았다.
맑은 국물과 함께 특이한 얇은 부채꼴 모양의 동치미를 건져 한 입 아삭 씹을 때면, 이내 짭짤함을 느끼고 그 중독성에 동치미만 먹게 된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도 할머니를 기억으로 뵙는다. 그렇게 모든 음식의 내 삶과 추억이 담는 방법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엄마에게선 닭볶음탕을, 아빠에겐 이 동치미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졌다.
아니 그 밖에 많은 요리들도.
엄마의 닭볶음탕, 김치죽, 아빠의 누룽지, 새우젓찌개 등등
지금은 원하면 부탁해서 먹어볼 수 있는 맛이지만 그 요리를 맛보지 못하게 된다면
분명 밥은 입으로 먹는 것이고 배가 고플 텐데 마음이 더 허전하고 눈엔 눈물이 가득 찰 것 같다.
자취하고 나서 요리를 할 때 가끔 엄마 아빠가 해 준 음식과 비슷한 맛이 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그렇게 가족은, 집밥은, 우리의 음식은.
살아가는 동안 배부르게 해줄 뿐만이 아니라 추억 또한 배불리 채워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