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그리고 '또' 눈물을 흘렸다. 원체 눈물이 많은 성격이기는 하다. 그런데 오늘 흘린 눈물은, 최근까지 흘린 눈물처럼 텅 빈 눈물이 아니라 진짜 가슴속부터 흘러내리는 듯한 눈물이었다. 20살 때 포기했던 꿈을 다시 취미로 시작해보자! 해서 갔던 뮤지컬 학원에서 독백 연습했던 게 어느 작품이었던 것인지 너무 찾고 싶어서 내 추억 박스를 뒤적뒤적했다. 그 독백은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 절실하고, 동시에 절망적이고 회한이 깊이 담긴 대사였는데 학원에서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을 하다가, 너무 몰입을 한 나머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모성애를 느끼며 내게는 가져본 적도 없는 아이를 그리며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대사를 쳤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내 깨달은 건 그 아이는 '나'였고. 그때 나한테 할 말이 있어 온 입시반 언니 두 명이 집중한 나를 보고 그냥 갔던 것도 알았으면서 무시한 채로 집중했었던 대사였기에 그 대본을 뽑은 게 어딨지 찾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꿈이 가득 찼던 그리고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려왔던 그때의 노트들을 보고 말았다. (사실 이게 목적이었는데 찾지도 못하고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정말 다양한 글들이 있었다. 단순한 대본 분석 캐릭터 분석 피드백뿐만 아니라 내가 왜 우울한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정말 같은 내용이 여러 번 적혀있었다. 이 부분에서 한번 충격을 먹었고 두 번째 충격은 내가 칭찬받은 것들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아버려서였다. "내가 잘해서 오늘 단체 연습이 일찍 끝났다." "오늘 내가 너무 좋았다고 해주셨다." "내가 돋보였다고 해주셨다"... "입시반 친구들과 동등하게 오디션을 함께 도전해보자고 해주셨다." "깐깐한 연기 선생님이 그래도 대학교 1학년 애들보다 잘한다고 해주셨다."... 물론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 더욱 많았지만, 계속 읽으면서 숨을 쉬기 어려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러다 얼굴이 어그러지고 눈물이 왕왕 쏟아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난 이리도 인정을 받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나." "왜 이렇게까지 연기를 사랑한 거야?" "다른 사람들보다 넌 훨씬 열정이 없고 게을렀잖아. 그래서 포기한 거잖아. 자신 없잖아." 속에서 다시 한번, 내 목소리가 들리는데 단 한 번도 위로한 적 없었던 그 목소리가 말했다. 아니 어쩌면 외면해왔던 내 감정들이 말한 듯, "넌 타인의 인정에만 그칠 생각이 없었잖아" "넌 현실보다 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잖아"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각오를 숨기고 싶었던 거잖아".... 난 대체... 왜? 한순간 싱클레어가 겪은 감정들이 모조리 공감이 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적는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그리고 다음장을 하나씩 넘기는데 정말 과거의 나한테 해머로 찍어 눌린 것처럼 머릿속이 쿵했다.
" 또 잊는 순간이 있겠지만,
다시 기억하도록 계속 적어놓자 " 난 나를 잘 알았구나, 잊어먹을걸 알고 있었네. 그리고 똑똑했구나, 과거의 미묘 네가 날 한방 먹였다. 그때도... 다시 어렵게 잡아보려 한 꿈이었잖아. 근데 또 잃어버리고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었네. 당장 이걸 느꼈다고 내일이 달라지고 일주일의 내 하루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또다시 나는 잊지 않도록, 기록해두고 싶어서 글을 적었다. 나라는 사람은 참 번거로운 인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이렇게도 명분을 찾고 쓸데없는 짐들을 내려놓기까지가 이리 오래 걸리고 또다시 짊어질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