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선고의 착각
솔직히 말해봅시다. 당신의 오늘 하루, 어제와 뭐가 달랐습니까?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길로 출근하고, 의미 없는 문서에 도장을 찍거나(혹은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퇴근 후엔 스마트폰을 넘기며 하루를 '죽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달라지겠지", "큰 기회만 오면..."이라는 안일한 생각만 반복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사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유령'처럼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70년 된 흑백 영화 '이키루(Ikiru, 1952)'를 봤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30년간 시청에서 결재 도장만 찍던 공무원입니다. 그는 위암으로 5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주민들의 민원이었던 작은 공원을 만들기 위해 남은 생을 불태우죠.
여기까지만 보면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변한다"는 뻔한 교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와타나베가 아닙니다. 그의 '동료 공무원'들입니다.
영화의 후반부, 와타나베의 장례식장에서 동료들은 술을 마시며 토론을 벌입니다.
"그가 왜 마지막 5개월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변했을까?"
"그래, 그건 그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야!"
"우리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처럼 행동했을 거야!"
그들은 와타나베의 죽음을 기리며 "앞으로 우리도 시청 일을 열심히 하자!", "변해야 한다!"라고 뜨겁게 다짐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카메라는 그들의 사무실을 비춥니다.
무엇이 변했을까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제와 똑같이, 아무런 감흥 없는 표정으로 책상에 쌓인 서류에 '도장'만 찍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동기부여가 되네", "나도 내일부터 변해야지"라고 생각만 합니다.
새해 첫날에만 헬스장을 등록하고, 좋은 강연을 들은 날에만 일기를 씁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정확히 어제의 '도장 찍는 기계'로 돌아갑니다.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할까요?
장례식장의 동료들처럼, "나는 아직 살날이 창창하니까"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게 아니니까, 저들만큼 절박하지 않아도 돼."
이것이 바로 당신의 무기력증을 합리화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입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도장 찍는 기계'였습니다. 매일 돈 걱정만 하며, 이 무의미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만 했습니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와타나베처럼 암에 걸린 건 아니니까"라며 오늘의 행동을 끝없이 미뤘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입니다. 그 사실을 '통보'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와타나베가 마지막에 한 일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공원을 만들겠다'는 작은 목표 하나를 정하고, 매일 서류를 들고 다른 부서를 찾아간 '구체적인 실행'이었습니다.
당신은 와타나베와 동료들 중 누구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야 움직일 겁니까? 아니, 장담하건대 당신은 선고를 받아도 저 동료들처럼 하루 만에 포기할 확률이 99%입니다.
변화는 '절박한 각성'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지루한 실행'에서 옵니다.
이 글을 읽고 또다시 "느낀 점이 많다"라고 생각만 하고 창을 닫지 마십시오.
그게 바로 '도장 찍는 기계'로 돌아가는 버튼을 누르는 행동입니다.
지금 당장 5분 안에 할 수 있는, 당신의 '작은 공원'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세요.
핑계 대지 마세요.
지금 당장 스마트폰 메모장을 켜서, '내 인생에서 만들고 싶은 작은 공원'이 무엇인지 딱 한 문장만 적어보세요. 혹은, 당신이 1년째 미뤄왔던 그 일(블로그 개설하기, 책 10페이지 읽기, 팔굽혀펴기 10개)을 지금 당장 실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