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계절이 오면
몇 번이나 글을 썼다 지웠다 하는지 모르겠다. 내 의견을 표현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단어를 고르고 또 골라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다시 지우고 또 쓴다.
가끔, 생각이 깊어지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평소엔 스쳐 지나갔던 철학적인 질문이 나를 잠 못 들게 만든다. 답이 없는 질문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가끔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물처럼 흘러가겠지만, 유독 깊은 사색 속에 잠길 땐 마치 아주 작은 방 안에 나를 가둬버린 기분이 든다. 그건 언제나 쉽지 않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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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이라는 역할
‘장녀 같아’, ‘첫째 같아’라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외동 같다, 막내 같다 같은 말이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은 누군가에게 “다시 태어나면 늦게 철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마음을 품고 있다. 철든다는 건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 환경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종종 그때 고집 한번 부려볼걸, 모르는 척, 못 느끼는 척해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아빠도 처음이었단 말을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공감하려고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원망하는 시기도 있었다. 나보다 27년이나 더 살아온 부모님을 왜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걸까 싶었던 날들도.
중고등학생이던 나는 내 하나 건사하기도 바빴고, 그 와중에 동생까지 챙긴다는 건 어린 마음에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반항심이 피어났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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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지금은 그 폭풍 같던 시절을 지나 다시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 내가 쌓아온 삐뚤어진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 나름 애쓰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버릇이다. 어릴 적, 억울하거나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면 아빠는 나를 달래기보단 혼내셨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야.”
“울어봤자 아무 소용없어.”
그 말들은 곧 내 학습이 되었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빠르게 잊으려고 애썼다. 그게 내 정신 건강을 지키는 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부모님은 말했다.
“이제는 서운한 건 말해도 된다”라고.
스무 살이 훌쩍 넘은 나에게, 어릴 적 그 말을 하라고 하다니.
5살 때 엄마가 그랬잖아, 6살 때 아빠가 그랬잖아—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유년기엔 말하지 않아야 했고, 지금은 말해야 한다는 이 충돌이 내 어설픈 감정 표현을 만든 것 같다. 고쳐야 한다. 안다. 하지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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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를 마주한다는 것
내가 겪은 일이 내 행동을 정당화해 주는 건 아니란 걸 안다. 잘못된 건, 분명 바꿔야 한다.
그래도—
고해성사처럼 한 번쯤, 털어놓고 싶었다.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일.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을 위해 졸업논문을 쓰던 어느 날 새벽. 갑작스러운 새벽감성으로 일기장에 끄적여둔 글입니다. 아직도 저는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언젠가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