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2017년 그리고 2024년
매년 5월 이맘때쯤이 되면 충남의 한 특수학교로 교육실습을 나갔던 2017년도가 생각난다. 교육실습은 대학교에서 교직이수를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보통 4주 간 진행된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에 특수학교의 고등부 2학년 1반으로 실습을 나갔었다. 여학생이 두 명 그리고 남학생이 다섯 명이었는데, 벌써 7년 가까이 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반 아이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난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쯤 그 아이들은 20대 중반의 어엿한 성인이 되어있겠다. 일곱 아이들의 어른이 된 모습을 상상하려 노력해 봐도 내가 기억하는 앳된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가다가 어쩌다 한 번쯤, 우연히 만날 일이 있을까?
교생. 이름만 들어도 뭔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기분이 든다. 마치 걱정거리 없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나는 내가 교생이었을 때부터 ‘언젠가 교사가 되면 꼭 교생담당 선생님이 되어서 실습생을 지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하지만 작년에 나는 4년 차 교사로 교육실습생 지도 자격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차 교사부터 교생지도 가산점이 나오기 때문에 4년 차까지는 교생을 보통 받지 않는다.) 그 대신 교육실습생 업무 담당자가 되어서 여러 대학에서 온 12명의 실습생을 받고, 선배교사들이 실습생을 지도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고자 노력했다. 작년 여름에 1급 정교사 연수를 이수하고, 올해 드디어 교육실습생 지도가 가능한 5년 차 교사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해 교육실습생 지도교사를 신청하고 특수체육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을 지도하게 되었다. 며칠 전 교생 오리엔테이션 날, 간단히 우리 반 학생들에 대해 알려주고 학급 운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내가 말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받아 적는 교육실습생의 풋풋한 얼굴을 보니 나의 교생시절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내가 ‘선생님’으로 처음 불렸던 게 교생 때였던 것 같다. 실습학교에서 누군가가 (대학생 신분인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얼떨떨하면서도 좋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이 교생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겠지?
교육실습을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해도 후회는 없을지 신중하게 고민해 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임용시험을 보고 교사가 되기 전(기간제 교사를 하지 않는 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특수교육현장에서 장애학생들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교육은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서 한 달 동안 기저귀만 갈다가 온 동기도 있고 전공과에 가서 치킨박스나 오이집게 조립만 하다가 온 선배도 있었다. 그리고 실습이 끝나갈 때 즈음 이 일이 자신에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여 다른 학과로 전과하거나 복수전공을 알아보는 동기들도 왕왕 생겨났다. 나는 운이 좋게도 교육실습을 하면서 이 길이 내 천직이다 느꼈다. 힘들지만 매일이 행복했다. 그리고 반 아이들이 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당시 반에는 남아공 국적의 학생 B가 있었다. 아마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던 B는 항상 무표정의 학생이었다. B의 부모님께서 우리나라에서 영어강사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몇 년 전 이 학교로 전학 왔다고 들었다. B는 자폐성장애 학생이었는데 아직 한국말을 잘 몰라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그리고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오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지만 영어로 수업자료를 따로 만들었고 간단한 영어회화를 배워와서 B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수능 이후 영어를 공부한 적 없었지만 EBS 초등 영어를 켜서 매일 연습했다.) B를 위해 수업의 일부를 영어로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노력에 B는 처음엔 낯을 가렸으나 이내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눈 맞춤도 잘 되지 않고(자폐성장애의 특성이다.) 언제나 무표정이었던 B가 나를 보면 이따금 환하게 웃어주기 시작했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 B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니 B가 이렇게 웃을 수도 있냐며 본인은 처음 보는 모습이라고 놀라셨다. 나는 이때 내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반드시 전달된다는 것도. 어쩌면 부모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만큼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교생을 하면서 나도 꼭 교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 이후로 시간이 지나 진짜 교사가 되었다. 올해로 5년 차가 되며 지나간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면, 열의 넘치던 신규교사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그 열정이 사그라질 때도 있었음에 반성한다. 이번주부터 나의 첫 교육실습생 지도가 시작된다. 교직을 꿈꾸던 대학생 때의 초심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2017년도 교육실습 시절에 만난 7명의 아이들 이름을 혼잣말로 불러본다. B, T, J, B, J, Y,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