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터널의 끝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기.
길고 긴 이별의 터널에서 헤매이다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얻는 마음의 평화는 덤인 걸 보면 어느새 예전의 내 모습으로 뚜렷이 돌아가고 있다는 안정감이 밀려든다. 나를 찾아가는 모습이 때론 감격스럽기도 하다며 스스로에게 순간순간 의식적으로 칭찬을 쏟아부어주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너무 늦게 경험한 탓일까. 이별 극복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고 싶고, 소식을 계속 알고 싶다는 욕심에 인스타 팔로우를 끊지 못했고 자주 접하는 전 짝꿍의 소식에 한없이 흔들리며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AI가 소설을 쓴다고 상상했을 때의 속도와 비슷한 느낌이려나?
어떻게 보면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때론 깊이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자책했었다. 혼자만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대체 무엇이 남나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스스로를 몰아붙였는데, 그 행동이 너무 힘들어서 이젠 나 스스로를 그만 괴롭히기로 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연결고리를 끊어내며 내 시야에서 삭제했더니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슬그머니 찾아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간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했었던 드라마 정주행이라는 취미를 새로 얻었고, 다시금 소설에 손을 뻗쳐 새로운 세계들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좋아했던 음악들을 찾아 듣거나 나의 발전을 위한 자기계발 영상들을 보기도 하고, 내 가치관의 근간이 되는 영성을 쌓기 위해 크리스쳔 뮤직을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다.
또한 손글씨로 일기 쓰기를 꾸준히 실천하려고 노력중인데 머릿속에서 답 없이 맴도는 생각과 고민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의 결론을 내볼 수 있어서 어느정도 고민 해소가 된다. 또한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 숨김 없이 나의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내가 이별로 한참을 힘들어하니 먼저 여행을 가자고 바다를 데려가고, 꽉 찬 시간을 보내주는 세심한 친구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꼭 잊지 않고 언제든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도 함께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 혼자 있는 시간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하니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이전의 연애에 에너지를 많이 쏟았던 탓일까, 지금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보다도 그냥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의 삶을 더 즐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한 걸 보면 당장은 지금의 삶이 꽤 만족스러운 것 같다.
새로운 학기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결심도 충분히 했고, 바쁘게 시작될 새 학기가 기대되는 걸 보면 많은 회복이 이루어진 것 같다. 나로써 온전히 잘 서 있을 때,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면밀히 이해하고 있을 때. 그 때가 되어서야 진정한 나의 바운더리가 형성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 선은 어디까지인지, 사람들의 행동을 어느정도로 수용할 수 있는지의 범주를 세심하게 아는 것, 그리고 나를 자꾸만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사람들과 어느 정도까지의 관계를 유지해야할지 치열하게 고민해보고 규정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다는 미명 하에 또 미룰것만 같긴 하지만.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과 면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아가 보고 나 자신과 친해져 보는 것, 올 한 해의 숙제이자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