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3년간 준비한 대기업 퇴사하다.(2)

무엇이 나를 못 견디게 만든 것일까?

by 민냥이

전 편에 이어 나의 퇴사 과정을 풀어보려 한다.

당시 불우한 집안 형편에 취업을 했던 나로선 대기업의 연봉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한 이유가 뭐냐고? 이렇게 살다 간 곧 죽을 것 같아서 그랬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는 엄청 나약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회 속에서 적응을 할 의지도 버텨낼 마음가짐도 없이 대가리 꽃밭인 상태로 입사를 한 게 문제였다. 원래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화 낼 줄 모르고 싫은 소리 못하는 나이기에 선배들도 그러겠지, 혼나고 억울한 상황은 없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출근을 하면 설비에 문제가 없는지 매일매일 체크하는 일명 '데일리' 란 것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데일리는 나를 매일매일 지옥 속에 처박았다. 데일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삼사십 분 일찍 출근해서 다른 조 근무시간에 눈치를 봐 가며 일을 시작해도 역부족이었다. 너는 왜 이렇게 손이 느리고 일처리가 느리냐, 너처럼 오래 걸리는 신입은 처음 봤다 등등.

평생을 생활기록부에 책임감이 강하고 솔선수범하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라는 내용이 12년간 빠진 적 없을 만큼 칭찬만 받고 살던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도 일을 잘해 웬만한 식당경력 수십 년 이모들만큼 일하던 내가 이런 비난과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을 못 견뎌한 것이다.

점점 더 부서 언니들의 눈치를 보고, 먼저 입사한 동갑내기 친구들과 비교를 당하고,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언니들이 나를 알은체 하며 "아~ 네가 걔구나?' 하는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입사 후 두 달쯤 지난 뒤, 나는 여전히 일이 늘지 않았고, 친한 동기는 나에게 '넌 열심히 해도 안돼'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운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떠올려 보겠다. 그날도 열심히 일하면서 설비 사이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설비에서 공정이 끝난 알림이 울리고 있어 확인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정말 희한하게도 내가 스치자마자 설비 한 대가 갑자기 다운된 것이다. (현장에서 설비 고장을 다운됐다고 표현한다.)

갑작스러운 다운에 당황해서 설비 엔지니어에게 콜 하려던 찰나 사수언니가 와서 무슨 일이냐 물었다.

"저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운됐어요"

"거짓말하지 마! 너는 왜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진짜 살면서 제일 억울한 일 Best 1이다. 털끝하나 스치지 않은 설비가 다운된 것도 내 잘못이라니. 내가 대체 무슨 거짓말을 한 건지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언니 죄송합니다' 하면 될 일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고 화를 버럭버럭 내던 사수언니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도 않은 일도 그냥 제 잘못입니다~ 하고 넘어가는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싶다.

그렇게 설비는 다운됐고 왜인지 모를 내 신뢰도도 바닥을 쳤으며 난 사수언니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입사 후 두 달 정도 지난봄 내 생일이었다.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오빠가 내 생일이라고 회사 근처로 와서 밥도 사주고 같이 영화도 봤다. 야간 근무가 있는 날이라 이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 회사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오빠를 붙들고 아주 펑펑 대성통곡을 했다. 출근이 너무너무너무하기 싫다고.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통근버스에 올라타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빠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해"

냉정하고 뼈 때리는 말만 일삼는 오빠가 힘들면 그만하라는 말을 하다니! 20년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비교적 따듯한 말(?)에 나는 용기를 내었고, 며칠 뒤 조장언니에게 퇴사를 말씀드렸다.

퇴사하겠단 의사를 밝히고 난 뒤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퇴사까지 이주정도 남겨놓은 시간이 내 평생의 사회생활을 통틀어 제일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퇴사하는 직원에게 남아있는 사람들은 꽤나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안겨주었다.

글로 다 적어보자면 그 이주동안 있었던 일들만으로도 작품 하나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일축하겠다.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던 내 동기 아라레, 짐 싸는 거 도와준 기숙사 룸메 빨간 머리 천사언니, 사수언니보다 나를 더 챙겨준 reality언니, 늦었지만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줬던 shine언니.

지금 생각해 보면 상처만 남은 회사생활은 아니었다. 감사한 분들도 분명 많이 계신다.

사람이란 게 다수의 감사한 일보다 소수의 힘든 일이 더 크게 와닿다 보니 그때를 회상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게 참 안타깝다. 글을 쓰는 지금도 하고 싶은 말과 억울함이 정말 많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든 게 많아 급히 마무리하게 되었다.

전 편에 댓글을 남겨주신 분이 계신데, 뒷 이야기가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 퇴사 후 한 1~2년 동안은 동기들에게 종종 연락이 왔었다. 퇴사해 보니 어떤지, 퇴사하는 게 나은건지. 모두 퇴사 관련 고민을 가지고 나에게 연락을 해 왔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나는 찬성이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도 찬성, 퇴사를 하는 것도 찬성.

퇴사한 지 13년 정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 판단을 해보겠다. 대기업의 복지와 급여,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과 나의 가치 등을 따져보자면 그것들이 주는 금전적인 부분은 보통의 회사원들이 누리기 힘든 것들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내 자아실현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한다면 퇴사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의 나는 큰돈은 없지만 조그마한 자가와 바퀴는 굴러가는 차가 있고 아주 귀여운 월급과 통장을 갖고 있으니. 사는데 지장은 전혀 없다.


그러니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퇴사하셔도 큰 문제는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 지금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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