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얼마 전 이런 대화를 했다.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미리 단언하는 건 좀 기만 같아.”
그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예전에 내 이야기를 꺼냈다.
편입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어서
아빠에게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루나야,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말은
고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핑계야.
안 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도망갈 길을 만들어두는 거지.
그냥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해버리는 거야.
그리고나서 그냥
일찍 일어나버리는 거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조금씩 덜 하게 됐다.
대신 이렇게 말하게 됐다.
‘이 방향으로 가야겠다.’
‘이건 이렇게 해야겠다.’
남자친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줬다.
“오빠도
‘할 수 있을까?’ 말고
‘해야지’ 하고
그냥 결심해버리면 어때?”
그랬더니
마음이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편해졌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말을 정말 자주 한다.
-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 지금 이 선택이 맞을까?
-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 질문 자체가 나쁘진 않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이미 한 발 물러선 상태에서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할 수 있을까?’를 오래 붙잡는 사람보다
‘이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해버리는 사람들이
훨씬 빠르게 변하는 걸 많이 본다.
아주 작은 선택 하나부터.
옷을 고를 때도 그렇고,
일을 선택할 때도 그렇고,
삶의 방향을 정할 때도 그렇다.
올해는
“할 수 있을까?” 대신
“그래, 해보자.”
이렇게 결심하는 장면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결심 하나가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