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8:00-9:00
생각보다 낮은 기온에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근길을 나섰다. 큰 파타고니아 배낭을 메고 여느 직장인과는 다른 차림새의 남자를 보며, 서울역으로 갈지 김포공항으로 갈지 그도 아니면 인천공항으로 갈지 궁금해졌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들 사이에서 저 여유로운 분위기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렇게 믿어본다.
지난여름, 수차례 두루뭉술하게 그려본 산티아고를 진짜 걸으려 했던 계획이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무산되면서, 나의 알고리즘은 산티아고로 점령당했다. 어차피 심각한 다리 부종과 빠질 듯한 골반 때문에 얼마 걷지도 못할 거면서, 매일 밤 알베르게 1인용 침대에서 뒤척이다 뒤늦게 잠들어 남들 다 떠난 아침에 느긋이 커피 한 잔 마시고 출발해 뙤약볕에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는 나를 상상했다. 먼저 출발한 지인은 오늘은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그녀가 남긴 인스타그램 사진 속 이야기를 부러워했는데. 저 배낭 멘 남자도 멋진 이야기를 가득 담길 바랐다.
출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가락을 다쳐 반깁스를 하고 목이 돌아가지 않아 보호대를 착용하면서, 산티아고를 떠나지 않고 이곳에 있는 내게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젊음은 이제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와 카드값에 한숨만 내쉬며 항공권 검색창만 열었다 닫았다 한다. 고작 열흘 남짓인 여행에 한 달 월급을 쏟아부어도 모자라는데, 어떻게 딱 삼 년만 떠나 그림 그리고 어학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부러워하고 그리워하겠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무기력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니까. 그럼에도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