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1:00-12:00
밤이 되면 이제야 나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지친 영혼을 위로할 도파민 충전을 가진다. 30분만, 10분만, 5분만, 이것까지만, 하나만 더, 잠깐 침대에 누워 숏폼 영상을 보다 보면 당장이라도 누워 잠들 것 같던 피로도 잊힌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씻고는 자야지, 쌓아놓은 컵도 씻어야 하고, 빨래도 돌려야 하고, 청소는 누가 안 해주나, 택배 반품도 내놓아야 하고, 도시가스 자가점검도 오늘까지인데, 할 일은 태산인데 도무지 몸을 움직일 힘이 없다. 하루의 절반을 출근-근무-퇴근으로 보내고, 잠도 고작 5-6시간 자는데, 그 나머지를 도파민으로만 채우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뭐 그래도 이만하면 나쁠 것 없는 하루다.
졸음이 한가득 눈꺼풀로 내려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집요하게 보고 또 본 숏폼을 보고, 동물과 여행과 국제이슈, 떠들어 재끼는 예능과 만나 본 적 없는 이들의 브이로그를 본다. 누구는 이렇게 콘텐츠를 만들고 돈도 버는데, 난 이걸 보느라 잠도 버티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구나 싶어 AI로 영상을 만드는 스터디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득하게 프롬프트를 수정하고 입력하고 슈정하고 입력하고, 새로 나오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또 구독도 하면서 유료 버전으로 고퀄리티 콘텐츠를 뽑아낼 아무런 준비가 안 됐던 나는 한편을 대충 만들어보고는 금세 질려버렸다. 그놈의 ‘딸각’. ‘딸각’만 하면 된다는 사람은 죄다 사기꾼 같다.
오늘도 6시간 채 못 자고 일어나 또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전혀 마음 맞지 않은 이들과 일을 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이라니, 그래도 내 역할을 하고 그 몫을 월급으로 받으니 나쁘지 않은 삶이겠지. 그럼에도 지인이 보내준 채용공고를 꼼꼼하게 읽어본다. 이게 과연 내 자리일까. 내게 맞는 일과 조직일까. 또다시 잘못된 선택의 반복은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결국 여기에 주저앉고 말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불어닥친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고, 관련 기사와 사업계획서를 검색하고, 지금까지의 업무 범위나 내부 규정, 예산 범위도 제대로 모르는데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
물론 꼴랑 10분 면접을 위해 며칠을 준비하고 1-2시간이나 걸려 면접장에 가서 또 1-2시간을 대기해 호감이라고는 1도 없이, 상사와 타 부서가 부당한 일을 시켰을 때 어떻게 대응할 건지, 새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당장 내놓으라는 듯 쏘아대는 다섯 명의 면접관들에게 10분의 최선의 답을 주기 위해 열심인 것이 더 지친다. 그렇다면 이 채용공고는 나에게 있어 그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지원인가, 결국 선택은 나의 몫. 이런 고민은 언제쯤 안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