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떡볶이는 모국어이자 제2외국어이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일대일 비율로, 매실청이 들어가 달달함을 채워주고, 양배추와 깻잎만 넣으면 참 좋겠는데 꼭 양파까지 썰어 넣어 맛의 흥미를 떨어뜨린 그 떡볶이는 내게 한국어이다. 한편 할머니의 떡볶이는 고등학교 때 처음 배운 독일어 같다. 간장이 베이스에 소고기와 파가 들어간 떡볶이인데, 키 큰 독일인이 건네는 ‘아흐뷔더제헨’ 인사처럼, 다음을 기약하는 맛이다. 학교 앞 떡볶이는 첫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서유럽 5개국 같다. 조미료와 설탕이 가득 버무려서 입안을 감싸는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하고 매콤하고 칼칼하면서도 자꾸 당기는 그 맛은 자꾸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한다.
언젠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다이어리를 보면 한국에 돌아가면 먹을 음식으로 ‘떡볶이’가 쓰여있다. 물론 그곳에도 떡볶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있긴 했는데, 이도저도 아닌 요리가 떡볶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의 실망감은 외국인 친구가 열심히 외워온 한국어 인사말을 전혀 못 알아들을 때와 같은 당혹감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떡의 식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듯한데, 학교 친구들과 서로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을 때도, 김밥과 불고기, 잡채는 인기가 많았는데 항상 떡볶이는 아시아 친구들의 몫이었다.
다행인지 요즘에야 k팝과 함께 k푸드도 인기라, 외국인들도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영상을 보곤 한다. 그때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그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배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항상 BTS와 블랙핑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제 ‘두유 노유 김치?’를 묻지 않아도, ‘아 유 사우스 코리안? 노스 코리안? 이란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떡볶이라면, 외국인 친구들과 떡볶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큼 내게 인상적인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언어도 지역별로 맛이 다르듯이, 특별한 재료가 보이지 않는데도 입맛을 쫙쫙 당기는 떡볶이부터 각종 토핑을 얹어 여느 레스토랑의 셰프 요리가 부럽지 않은 떡볶이까지, 우리의 언어에 자음과 모음이 있듯 떡볶이 국물과 참기름, 김가루가 들어간 볶음밥은 화룡점정, 사이드로는 매콤함을 잡아줄 치즈를 녹여 덮어진 감자튀김도 필수다. 이런 이야기는 잠들기 3시간 전부터는 절대 생각해서도, 관련 영상을 보아서도 안된다. 왜냐면, 먹고 싶어 지니까.
무엇보다 슬픈 것은, 할머니의 떡볶이를 이제는 먹을 수 없고, 엄마의 떡볶이보다 홍대의 ’또떡‘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점이다. 로제 떡볶이와 마라 떡볶이를 먹으면서 엄마아빠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점점 달라짐을 느낀다. 어차피 나의 언어와 내 다음 세대의 언어도 이렇게 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