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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Aug 17. 2019

엄마사람 개발자로 거듭나기

소프트웨어 개발 석사 과정을 시작합니다.

다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다. 그럼에도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어린아이 둘을 키워가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뻔히 알기에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석사 공부가 설레면서도 그 중압감에 잠을 깊이 못 자는 실정이다.


나는 ITU(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Software Design(Development) 석사 과정을 시작한다. ITU는 이름에서 보듯 덴마크의 IT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교이며, 내가 선택한 전공은 IT와 무관한 배경을 가진 자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빡세게) 2년간 가르친다.


나는 덴마크로 시집온 지 어언 5년 차이다. 그새 예쁜 공주님도 둘이나 낳아 나름 열심히 키웠다. 처음 덴마크에 와서는 덴마크 말도 얼른 배우고, 공부도 끝내서 어엿한 직장도 어련히 구해야지 하면서 내 능력과 분수에 넘치게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첫 아이를 출산하는 동시에 시작했던 CBS(코펜하겐 경영대학)의 석사과정은 마지막 논문 학기만 앞둔 채 지난해 자퇴를 했는가 하면, 운영하던 쇼핑몰도 폐업신고를 했으며, 덴마크 말도 똑바로 잘하지 못하고 아는 것도 아니요 모르는 것도 아닌 부유하는 상태이기만 하다.


만 서른, 한국에서의 친구들은 한 해 한 해 경력을 쌓고 대리과장님이 되고 (통장도 빠빵해지고) 있는데, 이곳에서 난 영락없는 아줌마로 남는 것인가 둘째 아이를 작년에 낳고서 끊임없는 자아비판에 빠졌다. 한국에서는 나름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살아온 나였기에,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가정주부를 통째로 비하하는 말은 아니다만, 가정주부 사람이 없는 덴마크 사회에서는 자기 일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무리 코딩 열풍이니 4차 혁명이니 그래도, 나는 일부러 멀리할 것을 피하는 것 마냥 IT와 담을 쌓고 살아왔고, 개발이 감히 내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지난해 가을까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세상 보는 눈이 좁았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후에는 유능한 개발자인 내가 한때 얼마나 무지랭이였는지 부디 웃으면서 이야기할 에피소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정말 반년 전까지 대륙에서 대륙간 바닷속에 "물리적"인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어서 우리 인간들이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건지 몰랐단 말이다. (속닥속닥)


엄마 사람이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것도 싱글과 천양지차이다. 아이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굴레이기도 하다. (루나 루시아 미안;) 일단 시간 확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써 가사에 쏟아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을 빼고 남은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시험기간일 때, 24시간 열람실에서 밤을 새든 어떻게든 나만 돌보며 나만 신경 쓸 수 있었던 10년 전과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공부도 때가 있다고 어른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나 보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엄마는 속절없다. 예고 없이 아이들은 아플 때가 있는 존재들인데, 그럴 때마다 나의 시계는 멈춘다. 주말도 불금이니 뭐니 하면서 기다렸던 직장인 시절과 다르다. 남편이 회사 안 가고 아이들이 어린이집 안 가는 주말은 엄마 사람에게는 제일 정신없고 고단한 이틀인 것을.


외국인이라는 점도 나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 나는 K 대학교에서 영문과를 졸업했는데 한국에서는 K라는 대학교 이름을 등에 업고 S사에 입사를 했고 이런저런 영어로 쓰인 계약서 관련 문과스러운 일을 했다. 한국에서의 삶은 난 참 운이 좋게도 노력에 비하면 돌아오는 득이 훨씬 더 컸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순진해 빠진 내가 덴마크에 오고 처음 선택했던 대학원 전공이 Business Communication이었는데 순전히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해왔던 일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어도 덴마크어도 네이티브가 아닌 내가, 그리고 덴마크 사람과 근본적인 소통(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법 등 제반)이 다른 내가 이런 전공을 골랐던 것 자체가 착오였다. 외국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Technology, Skills, Advanced knowledge, Network 중 하나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고등 기술이든 몸 쓰는 기술이든 그게 되어야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누구나 대체 가능한 두루뭉술한 문과스러운 능력으로는 정말 맨땅에 헤딩이더라. 쩝.




여러 약점과 한계점을 알기에 지난 반년간 나름 삽질도 해가면서 개발 공부를 독학했다. 워낙 인터넷에 양질의 자료가 널려있는 게 많아서 학교를 2월에 지원하고 6월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는, "굳이 학교 안 가도 다 배우겠는데?" 이런 생각까지 했다. 두 달 부트캠프를 가고서 주니어 개발자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꿈같은 소리에 귀가 솔깃했던 적도 있고(내 밑에 700만 원 쓸 돈이 없어서 포기), 웹 개발과 자바스크립트가 제일 핫하다고 해서 그것도 잠깐 손대보고 그랬다. 어떤 언어부터 공부를 해야 할까에 관해서만 수십 개의 아티클을 읽으면서, 또 수십 개의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유투브를 보면서 서당개 노릇도 톡톡히 했다. 근래 들어서는 CS50를 완강한 후에 1학기에 학교에서 배울 자바 언어 과정 내용을 독학했다. 아직 "아하!" 바보 도 트는 소리를 하루에도 수차례 하면서 Object Oriented Language를 공부하는 한편, 백엔드 쪽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것에 관심을 가지며 시도해보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분야이다, 졸업만 하면 취업이야 문제없다 낙관론이 대세지만,

또한 시간과 공간 업무에서 자유로움과 유연성이 있는 직업이라며 개발자의 인기가 부상하는 시대라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 나라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맡은 일이야 빈틈없이 나름 잘하는 (전형적인 범생이 스타일) 나지만 그리 창의적이지도, 뼛속 깊은 공대생도 아닌 내가 어떤 쪽 일을 하면 빛을 낼 수 있을까',

워낙 덴마크로 온 이후로 스스로 위축되며 살아온 탓에 이런저런 섣부른 걱정부터


'다음 주 오리엔테이션에서 낯선 애들이랑 어떻게 말하고 사람을 사귀는 거야!! 으악 ㅠㅠㅠㅠㅠ'

'당장 다섯 시에 수업 마치는 날에 남편이 아이들을 유치원/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는 것 어떻게 조율하지.'

현실적인 생각까지 내 속에 내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들도,

"그래, 내가 애 둘 엄마긴 하지, 그래도 취업할 때 만 서른둘밖에(?) 안 됐는데 애가 초딩이지, 더 이상 출산휴가 육아휴직 갈 일도 없지 회사는 개이득."

"또 그래, 내가 아시안 여자지,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마이너리티에 우호적인 곳이 있을 텐데 난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마이너지."

"또 맞아, 내가 공부로는 살면서 못 따라가겠다 해본 적 (거의) 없으니 지금은 백지일지언정 2년간 또 하면 잘하겠지."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면서 긍정의 힘을 찾고자 한다.


오늘 학교에 가서 학생증도 만들고 사물함도 신청하고 그러고 보니, 조금 학생이 된다는 실감이 난다.

하루하루 과제에 치이고 삶에 치여 이곳을 돌아볼 여유가 많을까 감도 없지만, 가끔 학교 생활해나가는 이야기, 학생 개발자로 일 구하는 이야기, 또 졸업 후에는 덴마크에서 개발자로서 직장 생활하는 이야기도 풀어나가고 싶다.


요즘 꿈꾸면서도 코드 리팩토링을 하고 그런다. 늦바람이 무섭긴 한데, 과연 재능까지 있었으면 좋겠네. 이렇게 재밌는 건 줄 알았으면 십 년 전에 배울걸 하는 입(손)방정도 감히 떨어본다. 늦게 찾은 이 길에 힘들지언정 후회는 없었으면 소망한다.


학비는 물론 한 달에 80만 원 매달 용돈까지 쥐어주며 또 2년간 공부시켜주는 덴마크에 제일 감사하며(직장인 되면 세금으로 돌려 갚을게),

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입김을 불어주고 매일 물심양면 도와주는 우리 남편에게 두 번째로 감사하며(부디 코드 리뷰도 해줬으면 좋겠거늘),

매일 이런저런 하소연만 늘어놓는 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우리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며,

예쁘고 영리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우리 딸 루나 루시아에게는 고마우면서도 짠하고 미안하고 그렇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지만 내 성공과 욕심을 미처 포기할 수 없었고,

이에 굳이 다시 어려운 공부라는 험난한 길을 온 가족(특히 껌딱지 우리 아기)의 희생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게 제일 마음에 쓰인다.


졸업하고 오늘 이 마음으로 쓴 글을 되읽을 때는 너, 잘했어 정말 수고 많았어 토닥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이버 블로그는 육아와 생활 이야기를 중점으로 쓰고, 개발 공부와 커리어 이야기는 브런치에 나누어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브런치를 통해서 굉장히 멋진 개발자 선배님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봐와서 나도 여기에 괜히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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