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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Feb 05. 2020

진심 빡센 학기 초 & 멘토가 생겼다.

힘을 냅시다.

개강하던 첫 사흘간 휴가 가느라 빠졌는데, 이렇게 힘에 부칠 수 있을까 싶었던 지난주.

이번주에는 놓쳤던 것 따라잡기에 더해, 이번주꺼도 소화하려니 정신이 없다.


이번 학기에 듣는 네 과목 중 수월한 과목이 하나도 없다. 데이터베이스는 그나마 직관적이고, SQL에 좀 익숙해지면 할 만한 듯한데, 첫 3주간 수업에서 SQL 문법을 대략 마친댔으니, 이때 제일 놓치는 것 없이 꽉꽉 채워야할 테다.


선형대수와 확률론은, 확률론부터 우선 시작한다고 했다. 수학을 평어체로 쓰인 책으로 읽으려니 도저히 진도도 안 나가고 꾸벅꾸벅 졸기만 해서 어쩌나 싶었는데, 이 교과서를 쓴 MIT교수가 친히 설명해주는 유투브 비디오가 있어서 책 읽기 대신 이걸로 따라가려고 한다. 학교 교수님은 그냥 칠판 네개 빽빽히 쓰는, 전형적인 수학 선생님이었다. 지난 학기에 이어 수학교수님은 모두 독일 사람이었다. (어쩌면 서 있는 모습마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독일 수학자.) 두시간 동안 선생님의 원맨쇼를 시청했다... 이걸 알아야 앞으로 내가 할 데이터 관련 일을 할 수 있다 하니 듣는데, 이것도 다음주 월요일까지 과제 제출이 있으니 공부 다시 해야지.


인공지능은 덴마크인 교수였는데, 미국 액센트 영어를 쓰더라. 교수로 재직하면서, 본인 비즈니스도 겸하고 있고 머스크라인의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했다는 데 프라우드와 에고가 강해보였다. 다른 수업들은 개강일부터 두시간 빽빽히 채워 수업했는데, 이 수업은 45분만에 마쳐서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렇다고 만만한 수업은 아니고, 원래라면 알고리즘을 배운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 과의 특성상 (2년만에 3년 과정을 마쳐야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병행해야한다고 했다.


난 아직 초짜라,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관계에 대해서도 막연하게나마 알았다. 요새는 여기저기서 머신러닝이 유행 같아 보이기도 해, 나도 논문은 머신러닝으로 쓰고 싶다 아는 것도 개뿔 없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 교수님은 머신러닝은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머신러닝 라이브러리 몇 개 능통하다고 그게 다가 아니다, 그건 솔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머신러닝 포함 여러 optimization 솔루션을 배울 수 있는 게 AI다. 그래서 데이터 쪽으로 진로를 가질 때 딱 한 과목만 들어야 한다면 AI를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상대가 엄청난 잘난척을 하니까 난 또 그대로 홀렸다. 하하.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인공지능도 결국 알고리즘을 배워야하는 것 같은데, 지금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난관은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이다. 첫날 수업을 한 번 놓친 게 이렇게 큰 타격으로 느껴질 줄이야. 생소한 내용, 논리적으로 sequence를 이해하기, 이해했다 쳐도 그걸 코드로 구현하기, 여기서 조금 변형하기 등.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서 어렵다고 느꼈다. 지난주에는 Quick find, Quick union, Weighted quick union 알고리즘 문제를 풀었던 거고, 이번주에는 Queue와 Stack을 배웠는데 그나마 이번 주꺼는 지난 학기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며 고민했던 부분을 해소하는 낙이 있었다.


본 강의 시간 이후, 한 시간 보너스 렉쳐가 있는데, 이 시간에 폰노이만 머신을 조금 배우고, 소스코드가 머신코드로 어떻게 변환되는지, 여기서 stack이 얼마나 유용한 개념인지 데모를 했는데, 코드를 쓰면 그 코드가 내부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메모리 할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을 듣는데 신기했다. 당연히 100% 다 따라가지는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코드를 쓸 때 저런 식으로 생각을 해야하는구나 느꼈다.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결국엔 하드웨어도 잘 이해해야한다고 들었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생각했다.




학교 공부에 치이니 사실 학교 밖 세상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 엔지니어링으로 세부 전공을 하고 싶었던 애초의 계획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세부전공으로 오며 결국 데이터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나니, 또 막막해졌다.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삽질은 아닐지, 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할지하는 마음에, 이웃집 아저씨(나이로는 오빠인데 ㅋㅋ)에게 SOS를 보냈다. 두 아이 모두 딱 4개월씩 차이 나고, 같은 아시아 사람(중국인)이다 보니 오며가며 길가나 놀이터에서 이야기하다가 첫 학기 시작할 때도 조언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진짜 우리집에서 만나서 둘다 진지하게 노트 펼쳐두고 아저씨가 하는 말들을 받아적었다.


BI 개발자로 이미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고, 컨설팅, 대기업, 스타트업까지 산전수전을 겪으며 지금은 한 회사의 데이터 팀 리더이다 보니 정말 직관적이었고, 내가 무엇을 집중해야할지 쪽집게로 배웠다. 이 업계의 생태계 전반에 대해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그리고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솔루션을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공부나 일을 병행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저씨도 아니까 가능했다.


학교 안에 있으면 정말 이게 가장 큰 문제 같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데, 이 만남 후에 일단 이번 학기는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실무를 익힐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생각키에 여러 데이터 관련 직군 중 BI 일이 내게 가장 맞을 것 같으며, 그래도 논문 주제는 아무래도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으로 쓰는 쪽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이론상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등 용어가 제일 멋있어보인다고 할지언정, 실제 프로덕션에서의 활용은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알려주었다. 실제 업무 환경은, SQL, Power BI, Cube를 쓰는 게 대부분이라며. 빅데이터를 예로, 덴마크에서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 실시간 거래가 오가는 은행, 실험실 데이터 관리해야하는 노보노디스크 같은 제약업계, 또 에너지 회사 Ørsted. 이외로는 사실 잘 없다고 보면 된댔다. 그리고 머신러닝은 데이터 모델링을 통해 "What would happen?" 예측하므로 거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부서에서 제한적으로 할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장 수요가 많은 데이터 직군은 회사 내부 여러 시스템에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What is happening?" "What could've happened?"를 분석하는 BI 데이터 모델링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 모델들도 점점 주류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내년에 취업하는 나한테는 Power BI 유투브에서 몇 시간 강의 보고, Tableau같은 비쥬얼리제이션 테크닉 좀 익히고, 이번학기에 SQL 제대로 배우고 나선 주니어 데이터 애널리스트 잡을 작은 회사에서 구해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참 와닿았다. 그리고 뼛속부터 프로그래머인 것도 아닌 나는 아무래도 비즈니스 일선에서 일하는 게 더 재밌을 거라고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성적까지 그렇게 좋냐면서, 어차피 내년에 졸업하면 갈 데가 널렸으니까 릴랙싱하면서 학교를 다니라는 말도 계속 했는데, 그러면서도 하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아시안들의 근성은 어떻게 바꿀 수가 없는 거라는 말도 서로 했다. 정말 사람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주니어 직군을 뽑을 때는 능력이 좀 모자라도 된 사람을 뽑게 된다고 했다. 덴마크에서의 동아시안은 뭐든 열심히고 겸손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평이 있으며, 또 요즘 IT업계에서는 여성비율을 어떻게든 높이려고 하며, 게다가 고작 30에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육아휴직을 더 낼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개이득) 나더러 직장 구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느 직장을 구하는 지가 문제일 뿐이라고(집 가까운 회사 찾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ㅋ), 이런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말 대신에 당신 회사에 나를 뽑아주시지요...;;) 애들 둘이 옆에서 놀면서 공부얘기, 일얘기, 아이들 얘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짜 친한 이웃이, 멘토가 생겨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니, 학생때의 마음을 알고 본인도 학생 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첫 보스에게 아직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내가 도울 수 있는 입장이 되면 도움에 인색하지 말라는 말까지 하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도, 또 공부하다가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몇번이고 하니까 진심 고마웠다. 드라이한 북유럽 사람들에게서 없는 아시안들의 유대감이 있긴 있나보다. (덴마크 나와살면서 만나는 중국인들은 어째 모두 한 가족처럼 느껴진다 ㅋㅋㅋ )


결론은, 닥공. 이번 학기 첫 단추 잘 꿰기.


끝.

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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