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타(打)의 철학

끝과 시작이 만나는 자

by M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세상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며 들뜬 마음으로 밤을 지새울 때, 나는 산소로 향한다. 할머니의 기일이 공교롭게도 이 날이기 때문이다. 끝과 시작이 하나의 날짜 위에 포개어진다. 죽음을 기리는 일과 새로운 삶을 축하하는 일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이것이 삶이다. 우리는 늘 끝과 시작의 경계 위를 걷고 있다.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오른다. 흙 위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다. 이 의식은 아마 내 평생의 도리가 될 것이다. 도리(道理)란 무엇인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걸어야 할 길. 이제야, 나는 비로소 그 길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다른 사람의 연민과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다. 그래서 밀린 감사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또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리라.




새해를 맞이하는 태도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냉소하는 자와 열광하는 자. 냉소적인 사람들은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하루인데, 새해라고 뭐 호들갑이냐고. 어차피 대부분 지켜지지 않을 새해 다짐 따위 괜한 짓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매년 세웠던 독서, 운동 등 새해 다짐 중에 제대로 지킨 것이 무엇이던가. 솔직히 부끄럽지도 않다. 너무 많이 실패해서 무뎌진 탓이리라.


반대편에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연말이라고 가족, 연인, 친구들과 기념하고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린다. 새해에는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이루겠다 선언을 공표한다. 몇 달, 아니 몇 주 뒤면 여러 가지 이유로 조용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 뭐 어떤가.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 뜨거움이 부러울 때가 있다. 냉소가 지혜의 증거가 아니듯, 열정이 어리석음의 표식도 아니다. 어쩌면 열정은 삶을 향한 예의이고, 냉소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026년을 맞이하는 나는 어떤가. 냉소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한 일이나 열정도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나이가 먹은 것일까. 누가 보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헛소리 한다고 할 테지만, 분명 변화는 있다. 변화는 숫자로 오지 않는다. 거울 속 주름으로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예전 같으면 뛰어들었을 일에 한 박자 멈추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변화가 왔음을 깨닫는다.


나라고 사업적인 성취나 관계적 목표가 없겠는가. 아직 여자친구도 없고, 결혼 적령기에 꽉 찬 나이다. 외롭기도 하고, 원하는 것에 대한 욕심도 그득그득하다. 물어만 보면 밤 샐 만큼 원하는 게 많다. 그런데 다 가질 수는 없더라. 이 단순한 진리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힘 빡 주고 사는 건 힘든 일이다.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손을 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성숙이라는 것의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새해 첫날, 누나와 매형, 조카들을 만났다. 외숙모와 사촌동생도 만났다. 같이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새해 덕담이었겠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외숙모가 그랬다.


"인생은 골프랑 비슷해! 왜 아까 오비 난 걸 신경 써, 왜 아직 치지도 않았는데 벙커 들어갈 걸 걱정해. 그냥 날 믿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한 타 한 타 치는 거야!"


골프를 자주 치지 않는 나에게도 그 말은 깊이 와닿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미 지나간 실수에 매달려 보내는가. 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아직 오지도 않은 불안에 소진하는가. 과거의 오비(OB)는 이미 친 공이다. 되돌릴 수 없다. 미래의 벙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걱정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지금, 이 한 타뿐이다.




그래서 올해 하고 싶은 일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매 순간 나를 믿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참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단순한 것이 왜 어려울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한 타를 치면서 열여덟 홀 전체를 보려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십 년 후를 계산한다. 시선이 분산되면 스윙이 흔들린다. 삶도 마찬가지다.


새해가 되었다고 새로운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1월 1일의 나와 12월 31일의 나는 같은 사람이다. 다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매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수천수만 번의 한 타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거창한 스코어를 꿈꾸기보다, 지금 이 한 타에 온 마음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2026년에 배우고 싶은 전부다.


할머니 산소에서 내려오며 올려다본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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