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오늘의 명언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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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신채호



신채호(1880년 12월 8일 (음력 11월 7일) ~ 1936년 2월 21일)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이다. 본관은 고령, 호는 단재(丹齎)·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이다. 필명은 금협산인·무애생·열혈생·한놈·검심·적심·연시몽인 등이 있고, 유맹원·박철·옥조숭·윤인원 등을 가명으로 사용하였다. 구한 말부터 언론 계몽운동을 하다 망명,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백범 김구와 공산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들로 임정을 탈퇴, 국민대표자회의 소집과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사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1936년 2월 21일 만주국 뤼순 감옥소에서 뇌졸중과 동상, 영양실조 및 고문 후유증 등의 합병증으로 인해 순국하였다.

그는 국사 연구를 위해 북경 중법대학(中法大學) 교장이자 중국 국민당 원로가 되는 이석증(李石曾)에게 대학 도서관 열람의 편의를 부탁하여 사고전서 등에 출입하며 중국어 역사 서적을 읽고 본격적으로 국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1922년에 중국역사연구법을 쓴 양계초 선생의 역사 연구 방법에 영향을 받아 《조선상고사》를 집필하였다. 1924년 1월 동아일보에 《조선 고대의 문자와 시가의 변천》을 게재하였고, 1924년 10월부터 1925년 3월까지 《상고사 이두문 명사해석법》, 《삼국사기중 동서양자 상환고증》,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평양패수고》, 《전후삼한고》,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등의 글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들은 1930년대에 《조선사연구초》라는 책으로 묶여졌다. 또한 1925년 시대일보에 《부를 수한 차대왕》,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년대에 대하여》를 투고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국권을 회복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한 민족주의자로, 국사 연구와 교육을 중시하였다. 기존의 왕과 영웅 중심의 전근대적인 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학을 내세웠다. 신채호와 박은식을 통해 정립된 민족사관은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근대적이고 자주적인 주체적 역사관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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