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라.
일은 모두 때를 정해서 하라.
- 밴자민 플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영어: 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1790년 4월 17일)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영어: 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중 한 명이다. 그는 특별한 공적 지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프랑스 군(軍)과의 동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국의 독립에도 기여했다. 최초로 민간형 비행기를 발명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계몽사상가 중 한 명으로서, 유럽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피뢰침, 다초점 렌즈, 민간형 비행기, 뇌파측정기, 홀로그램 기술 등을 발명하였다. 달러화 인물 중 대통령이 아닌 인물은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하고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 두 명에 불과하다.
과학
1748년 그의 사업이 많이 번창함에 따라서, 프랭클린은 과학에 뜻을 두어 사업을 대리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봉급을 받으면서 과학을 탐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740년대 초기에 그가 발명한 난로(프랭클린 스토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아주 많은 실험을 행하였다. 1752년에 그의 유명한 실험인 '연 실험'을 행하였고, 번개가 전기를 방전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번개를 구름에서 끌어내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뾰족탑을 세우자고 제안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로, 또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면의 재현으로, 그의 피뢰침이 발명되었다. 후에 복초점 렌즈가 발명되는데 이것도 프랭클린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1753년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정되었고, 코플리 메달을 받았다. 그해 전 식민지 체신장관 대리가 되어 우편제도를 개선하였고 54년 올버니회의에 펜실베이니아 대표로 참석, 최초의 식민지 연합안을 제안하였다. 57년 펜실베이니아의 이익을 위하여 교섭을 벌일 목적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식민지에 자주과세권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64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인지조례의 철폐를 성공시켰다. 75년 귀국하여 제2회 대륙회의의 펜실베이니아대표로 뽑혔고 76년 독립선언 기초위원에 임명되었다. 그해 프랑스로 건너가 아메리카-프랑스동맹을 성립시키고, 프랑스의 재정원조를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83년 파리조약에는 미국대표의 일원이 되었다.
정치가로서 그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자치에 대해 영국의 관리들과 토론을 벌일 때 식민지의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했으며, 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원조를 얻어냈다. 또한 영국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국석 대표로 참석해 13개 식민지를 하나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는 조약을 맺었으며, 2세기 동안 미국의 기본법이 된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었다. 특히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기초한 '미국독립선언문'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서명을 하였으며,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헌법에 기도에 대한 문항을 넣으려 하였으나 무산되었다.[8]
프랭클린은 독립선언서(1776), 프랑스와의 동맹 조약(1778), 영국과의 평화 조약(1782), 미국 헌법(1787)에 모두 서명한 유일무이한 인물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