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오늘의 명언 - 버트런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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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는 지식에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


제3대 러셀 백작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영어: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OM, FRS, 1872년 5월 18일 ~ 1970년 2월 2일)은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1]이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저술하여 수리논리학의 성립에 공헌하였으며, 이후 평화주의 운동과 저술활동에 참여하였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일생의 여러 부분에서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순으로 자신의 이상을 생각해왔으나, 자신이 이 중 어느 쪽도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2] 일생의 대부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으나, 그는 웨일스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사망했다.[3]

러셀은 1900년대 초반 "관념론 반대운동(revolt against idealism)" 을 일으켰으며, 그의 선배 프레게, 제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꼽히며, 20세기의 선두 논리학자로 자리매김했다.[1] 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저술했으며, 이는 수학을 이용해 논리학의 기틀을 닦고자 한 시도이다. 그의 철학 에세이 〈On Denoting〉은 "철학의 패러다임"으로 간주되고 있다.[4] 그의 저술은 논리학, 수학, 집합론, 언어학, 철학중에서도 언어철학, 인식론, 형이상학에 영향을 주었다.

러셀은 당시 반전 운동가로서 크게 활약했다; 그는 자유 무역을 지지했으며, 반제국주의 운동가로도 활약했다.[5][6] 러셀은 1차 세계대전 때 반전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었으며,[7] 이후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주의자, 전체주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과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는 핵무장 반대운동에도 열렬히 참가했다.[8]

1950년, 러셀은 "인본주의와 양심의 자유를 대표하는 다양하고 중요한 저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사상

러셀의 철학사상은 흔히 지적되듯이 발전적이며 자주 변하였으나 그 기초가 되어 있는 철학에서의 분석적 방법은 일관되어 있고 이에 의해서 과학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다. 이 방법을 토대로 영국 경험론의 전통 위에 선 인식론을 전개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37]

처음에는 대학에서 받은 교육 때문에 헤겔적인 절대정신만을 참된 실재라고 하는 관념적 일원론의 입장에 지지했으나 그것이 수학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이 입장을 버리고 그 반동으로서 이번에는 많은 존재물을 인정하는 다원론의 입장을 취하였다. 《철학의 문제들》(1912)에서는 개체와 보편, 감각과 물체를 함께 인정하는 이원론적·플라톤적 실재론의 입장에 지지하였다.[37]

《외부 세계의 인식》(1914)에서는 감각소여(感覺所與, 센스 데이터)만을 확실한 것으로 보고, 사물은 감각소여로부터 논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명한 견해에 도달하였다. 이 무렵부터 그는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 원자론이라고 불렀는데 《정신의 분석》(1928)에서는 감각도 물체도 아닌 중립적인 것을 참된 존재로 보는 중성적 일원론(中性的 一元論)의 입장을 확립하였다.[37]

종교에 관한 견해

러셀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그는 사후세계를 부인했으며, 신의 존재를 부정했는데,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근거에 의한다. 즉, 종교는 인간이 그들의 믿음을 즐기기 위한 도구이며,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덕이 있고, 그들의 적은 악함을 보이기 위한 것으로 주장하였다.[38] 그는 '신의 존재 여부는 지식을 가질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으며, 인간의 영원성 또한 증명이 가능해야만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영혼의 영원불멸성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인하며 기독교의 교리의 핵심으로 기독교가 부흥하게된 기초를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신을 믿게 되며 그 믿음을 통해 우주 전체를 기도의 능력으로 좌지우지 가능케 되어, 죽음의 공포를 완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문적 업적

분석철학

러셀은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선구자적 업적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20세기 초에는 헤겔에 영향받은 이상주의에 반대했고, 30년 뒤에 이는 비엔나에서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해 형이상학 반대를 반복했다.

논리와 수리 철학

러셀은 근대 수리 논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러셀이 자신의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러셀의 첫 수학에 관한 책은 《기하학기초론에 관한 에세이(An Essay on the Foundations of Geometry)》이다. 이 작품은 칸트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 러셀은 자신의 책이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스키마를 받아들일 여유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칸트의 수학과 기하학을 완전히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작업에 대해 거의 중요성 없다는 평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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