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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쓴이 Oct 27. 2022

이별 앞에 별 수 있나.

이별다운 이별

익숙한 자리다.

앉고 싶지 않은 자리였는데 불편한 익숙함이 청개구리처럼 나를 자리로 이끌었다.

그때도 이렇게 햇살이 내 눈을 찔렀었나. 비슷한 시간대였던 것 같은데.  

누군가와 이별하기에 좋은 장소는 없다. 생각보다 장소는 힘이 세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2 전의 일이 여전히 생생한  보면 말이다.

나와의 약속엔 1분이라도 늦는 게 미안해 항상 먼저 나와 있던 사람이었다.

그날 나는 20분가량을 기다렸다.

너는 미안하다 했지만, 사실 별로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의  얘기가 훨씬  미안할 얘기라 그랬는진 몰라도.

결혼을 앞둔 여자가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프러포즈받을 준비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아니 그는 이별을 결정했고, 그저 의식을 치르기 위해 나올 뿐이었다.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뒤늦게 나타난 그의 진실은 예상대로 변하지 않았다.

그 단단한 결심 앞에서, 먹히지도 않을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면서도 나는 느꼈다.

중간부터는 내 얘기를 흘려듣고 있음을.

교무실에 불려 온 야자를 빠진 학생같이, 최대한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순간, 지금 내가 그를 고문하고 있단 생각이 나에게도 고문으로 다가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헤어지는구나. 싶었다. 미련하게 미련을 떨까 , 민망하면서도 이런 잔인한 의식을  치러야만 하는 거구나.

정말 그 후로 미련 같은 건 없었다. 아무리 인사불성으로 취해도 그 흔한 뭐 해? 라던가, 자니? 따위의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런 없어 보이는 문자를 보낼 나이가 이미 지난 탓이기도 했고, 내 무의식 또한 그를 완벽히 잊은 듯했다. 사실은 잊은 게 아니라, 철저히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가 큰 헤어짐일수록 사람은 냉철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세상에 사랑은 없다고, 그만 정신 차리라고 혼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될 수 없다. 사랑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모두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랑과 이별은 그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별다른 대책이 없다. 계속 휘둘리고, 정신 차리고를 반복할 뿐이다.


마지막까지 쓸데없는 오지랖이겠지만, 언젠가는 그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깨닫기를 바란다. 사랑은 그저 호르몬의 장난질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에 사랑은 없다고 자신 있게 외치던 오만 앞에 결국 또 사랑만큼 힘이 센 것도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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