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립 보조교사 첫 한 달 후기
미국 공립학교 보조교사로 취업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그렇게 기다렸던 첫 월급도 받고 말이다. 경력단절 이후 얼마만의 급여인지 눈물이 다 찔끔 났다. 그것도 달러를 벌었다!
결혼 이후 아이 셋을 키우며 정말 일이 그렇게 하고플 수가 없었다. 셋째 아이를 낳고 키울 때는 창밖에 보이는 회사 명찰을 단 멋진 커리어우먼들만 봐도 눈물이 났더랬다. 나도 일하고 싶다.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둘째 아이까지는 그래도 회사에 다닐 수 있었는데 아이가 셋이 되니까 어림없었다.
우리 셋째가 8살이니까 8년 만인 거다. 남편 수입에만 의존해서 생활하다 내 노동력으로 돈을 벌다니 이제 나 자신을 찾은 것 같았다. 내가 번 돈으로 사 먹는 커피 한 잔이 너무 맛있었다. 감격스러웠다.
미국 공립 보조교사 취업수기는 남겼고 그럼 한 달 동안의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교육구, 즉 여러 학교들을 관리하는 교육청 소속 보조교사이기 때문에 교육구 보조교사들이 접속하는 포털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는 job을 골라서 신청하고 그 학교에 찾아가서 일을 하면 된다. 우리 교육구에는 50여 개가 넘는 학교들이 있고 초, 중, 고 모두 가서 일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은 신입이니까 안전하게 첫 근무지는 초등학교를 골랐다. 초등학교는 발런티어도 많이 가봤으니까 시스템이 뭔가 더 익숙하니까 말이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일단 3시간짜리 보조교사 자리를 신청하고 그날이 되어 찾아갔다. 너무너무 떨렸다. 전날엔 잠도 잘 안 왔다. 너무 겁나서.
근무일이 되어 아침 일찍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근무지인 학교로 갔다. 교육구에서 받은 내 명찰을 달고 학교를 들어갔다. 명찰을 하나 달았을 뿐인데 소속감이 생기고 기분이 묘했다. 와 내가 미국에서 직장을 가지게 되다니. 영어 못하는 이 아줌마도 채용해 주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를 들어간다. 오피스로 가니 10분 단위로 짜여 있는 오늘 내 스케줄표를 준다. 학교 내부 지도도 함께 준다. 그래도 다행히 처음 일하러 간 학교는 우리 둘째가 졸업한 학교라서 내부는 익숙했다.
시간표를 보니 내가 가야 할 교실, 케어해야 할 아이 이름, 참고 특이사항 등이 쭉 쓰여있었다. 학교 지도를 참고해서 배정된 교실로 들어갔다. 2학년 클래스였고 한참 수업 중이었다. 선생님께 오늘 보조교사로 왔다고 말씀드리니 내가 케어해야 할 아이를 알려주신다. 나는 그 아이 옆으로 가서 수업 중 해야 할 일들을 함께 하고 규칙을 지키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2학년 교실에서 아이를 돕고 있다 보니 나도 함께 영어를 배운다. 2학년 영어가 딱 내 수준인 것 같았다. 올해는 2학년을 계속하고 내년은 3학년을 가면 되려나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생생한 미국 학교의 교실을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내가 그날 맡은 아이는 장애가 있는 친구는 아니었고 주의가 산만해서 수업에 집중을 잘 못하고 학습적인 진도가 느려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다. 선생님의 원활한 교육 진행을 위해서 미국 학교에서는 장애가 있는 친구뿐 아니라 이런 친구들을 위한 특수 교육도 제공이 된다. 아이가 제어가 잘 안돼서 다른 친구들 수업에 방해가 되면 따로 복도에 있는 데스크로 나가서 보조 교사가 학습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특수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미국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일상을 일반 클래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아이의 상황에 따라 시간표를 짜서 나머지는 특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교실로 가서 수업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특수 아이의 경우 교실 이동이 많고 그 일정을 스스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전담 특수교사가 늘 붙어 다닌다. 그런 전담 특수 교사들은 보통은 아이와의 유대감이 중요해서 학교 소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교사들이 개인 일정으로 휴가를 가거나 갑작스럽게 결근을 할 경우 나처럼 교육구 보조교사가 투입되는 것이다. 전담 보조교사들과의 유대감이 강한 특수장애 아동들은 나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심한 거부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체로 학교 내의 또 다른 특수교사가 담당을 하는 것 같고 나의 경우 배정되는 아이들은 대개는 심하지 않은 정도의 장애와 학습 부진, 발달이 조금 느린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 아이들이 익숙한 학교의 환경이라서 그런지 너무 어렵지 않게 나에게 적응해 주곤 하였다. 오히려 학교마다 너무 다른 구조와 길치인 내가 늘 부적응이었다.
아이들은 수업 중간중간 Recess라고 부르는 시간이 20분씩 있는데 바로 밖에 나가 운동장을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다. 오전/오후 보통 2번의 리세스 타임이 주어지는데 운동장이 붐비는 걸 고려해 학년별로 다르게 시간을 나누어 가진다. 그리고 학교의 스태프들이 여러 명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놀이터, 운동장 등을 돌아다닌다. 나도 그 임무를 배정받아서 아이들이 위험하게 놀지는 않는지 나쁜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지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는지 관찰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서로 사이좋게 함께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열심히 노는 아이들을 보니 나 어릴 때도 문득 생각이 난다. 생각해 보면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하고 노는 게 세상 최고 재미있었는데 미국 아이들도 모두 똑같다. 리세스 시간이 되면 기가 막히게 빠르게 라인업을 하고 줄 맞추어 운동장으로 나간다. 역시 아이들은 밖에 공기 마시며 실컷 뛰어노는 게 진리다. 아이들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한국인답게 늘 시키지 않은 일까지 일을 만들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여러 군데의 학교들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다. 그러다가 백인들이 대부분인 동네의 한 초등학교에 간 날, 일이 끝나고 인사를 하러 갔는데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여기 3학년 여자아이가 머리를 심하게 다쳐 그 이후로 학습부진 장애를 겪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 2주만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학교가 인상 깊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의 적극성이었다. 미스이신 이 교장선생님은 30대 초반의 나이로 늘 운동화를 신고 노트북을 들고 학교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었다. 처음에는 교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나처럼 지원을 나온 Sub티쳐 인가? 참 적극적으로 일하네. 내 경쟁자네.라고 생각했는데 이 학교의 리더라는 말을 듣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기에도 좋을 것 같아 2주 간의 특수보조교사 자리를 수락하고 일을 하기로 했다. 이 학교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