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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Jul 26. 2023

프로불편러 선생님

제가 예민한 건가요? 

어젯밤에 이불킥을 했다.


현지인 선생님과 함께 시험문제를 재확인하는데 거슬리는 문항이 있었다.

가족에 대한 문제였는데, 그림 속에는 성인 두 명과 아이 두 명이 있었고 예문에는 '이 가족은 아버지가 없어요',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이 있어요' 등이 있었다.


사진만 보고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내 말에 현지인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사진 속 성인 남자를 가리켰다. 근데 그게 아버지가 아니고 삼촌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냥 예문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1차로 좀 어이없어 하셨다. 

그리고 이 어린이들이 아들과 딸인지 딸 둘인지 아들 둘인지 어떻게 단정짓냐는 나의 질문에, 얘는 머리도 짧고 바지를 입고 있잖아요! 라고 하셨다. 여자도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을 수 있잖아요! 얘가 남잔지 여잔지 어떻게 알아요?! 라고 말하며 가족 수 같은 명확한 예문으로 바꾸자고 했는데 선생님이 2차로 한숨을 쉬시며 더욱 더 황당해 하셨다.....아씌...그냥 가만 있을 걸 그랬나?....


가족관계를 정해주지 않고 사진만 제시하여 자유롭게 연습하다보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세명으로 이루어진 사진만 보면 이 가족의 구성원이 부모님과 자녀 한명일 수도 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 자매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호칭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모두 정답으로 처리한다.  

따라서 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이 시험문제를 본다면 정답이 확실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명확한 예문으로 바꾸고 싶었던 건데... 하아...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언어를 배우거나 가르치다보면 초반에 가족에 대한 단원이 나온다.

가족 관계와 호칭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앞 부분에서 다양한 직업과 나이를 세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연습해야 하므로! 마지막 연습문제에 나의 가족을 소개하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알고 싶지 않거나 말하고 싶지 않아도 서로의 가족 관계와 이름 직업 나이까지 모두 오픈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 소개를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지 물어보면 대부분이 괜찮다고 한다. 허나 혹시라도 싫은데 싫다는 말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까봐 진짜 가족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언어 학습의 특성상 질문을 받으면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게된다. 그래서 그냥 대충 지어내라고 해도 사실 그게 더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기 연습을 시킬때는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 사진을 제시하며 관계와 이름 직업 등은 랜덤으로 정해준다. 



그동안 일하고 살았던 환경에서도 그렇고, 초반부터 유럽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부분을 아주 예민하게(예민하게, 라는 말도 좀 어폐가 있는 듯) 다루는 게 더 자연스럽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조심하려고 하는데도 나도모르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코로나 초기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데,

유럽 학생인데다가 머리가 아주 짧아서 화면으로만 보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알 수 없던 학생이 있었다.

우리말의 특성상 언니와 누나, 오빠와 형을 제대로 사용하는 지 확인하려면 학생의 성별을 알아야 하는데 화면상으론 알 길이 없었다. 이름이 여성형인 것 같길래 대충 때려 맞추긴 했는데 (다행히 여학생이 맞았음) 진땀이 나는 순간이었다.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어린 학생이 있었다.

얄상하게 생긴데다가 머리까지 엄청 길었기 때문에 나는 첫 수업에서 그 학생이 당연히 여자아인줄 알았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간다고 하길래 여자 화장실을 가리켰는데, 학생이 '저 남자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아차 싶었었다.



동료 선생님이 이런 내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약간 괴롭긴 하지만 

모두가 어느정도는 '프로불편러'가 되어 예민하게 굴었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다는 이유로 아예 인식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면 누군가에게 실례를 넘어 상처가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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