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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Oct 26. 2023

인도네시아가 좋은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에 온 지 벌써 1년 하고도 두달이 지났다. 

블로그에 끄적이는 글의 대부분은 인니생활의 불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가 좋은 이유를 고찰해 보았다. 


인니 매력 1. 정말 부드러운 사람들 

베트남에 살고 있는 선생님을 발리에서 만나서 수다를 떠는데, 내가 여기 사람들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말하니까 그녀가 놀랐었다. 보통 외노자로서 길게 체류하면서 현지인들을 사랑스럽다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것 아니냐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정말 좋다. 

원래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마지막엔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헷갈리는 부분을 쓰기 위해 부드러움으로 바꾸어 표현해봤다. 

여기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고 웬만하면 언성도 높이지 않는다. 

술값이 비싸서 그런가, 무슬림이 많아서 그런가... 여튼 술을 잘 안 마시니까 다들 맨정신이라서 그런가, 길에서 남자들이 외국인 여자를 쳐다볼때도 '눈빛강간'이 없다. 밤길을 걸은 적이 종종 있었지만 캣콜링을 당해본 적이 한번도 없고 꽤나 안전한 편이다. (내가 그 경험을 안했다고 해서 백퍼센트 안전한 나라라는 보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안전한 편에 속한다는 뜻) 

동료가 주변 사람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길래 저주 인형을 알려줬다. ㅎㅎ 이걸 하나 만들어서 열받을 때마다 찌르라고 했더니 자기는 무슬림이라서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아! 르바란 인사말 Mohon maaf Lahir dan Batin(내면의 악과 외면의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여기에서 바띤batin은 나쁜 마음을 먹는 것을 뜻한다)을 듣고 인사 하나로 땡치나 싶었는데, 아예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건가...사람들이 다 선한 것 같다.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여행하고 살아봤던 수많은 나라 중에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여행을 매우 자주 다니는 친구도 여기와서 그 부분엔 공감하고 갔으니 믿을만하다. 

인도네시아의 여기저기를 여행할 때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뜨리마카시 대신에 이미 알고 있는 감사합니다를 알아서 말해주거나 감사합니다를 급하게 외워서 말해준 적도 있다. 놀라우면서 고맙고 기분이 매우 좋다. (영어 원어민들은 땡큐를 들을 때도 이런 감사한 기분은 전혀 못 느끼겠지...) 

 

인니 매력 2. 천혜의 자연 

대부분 사람들이 자와Java에 몰려 살고 있긴 하지만, 섬마다 특색이 뚜렷해서 여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만 8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구석구석 여행할 곳도 엄청 많다. 그곳을 찾아가는 게 쉽지 않긴 하지만 인프라와 편의성을 논하지 않는다면 보고 싶은 곳도 많고 아름다운 곳도 매우 많은 원석같은 나라이다. 여기에서 여행을 다니며 전에 없던 폭포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떨어지는 물줄기의 멋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해양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천국이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야자수의 로맨틱한 광경은 물론이고, 해가 강하고 비도 많이 와서 그런가 색다른 모양의 가로수들도 많고 길가에 그냥 자라는 나무들도 천년 이상은 된 나무같이 웅장하게 생겨가지고 길쭉하고 멋있다. 발리에 가면 그런 나무들에 흑백 체크무늬 천을 둘러놓는데, 그게 또 얼마나 성스럽고 신비로워 보이는지..나마스떼가 절로 나온다. 

계절마다 피는 꽃도 엄청 예쁘다. 중랑천에 심어진 꽃들이나 튤립 축제에 동원된 꽃들을 보다가 온 나에게는 차를 타고 그냥 지나가다 눈을 돌리면 탐스러운 꽃이 흐드러지는 꽃나무 개념이니, 바람이 살랑 불어서 꽃잎이라도 떨어지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도시 중간중간에 내 나무를 정해놓고 매일매일 감상하는 기분이 상당히 좋다. 

 

인니 매력 3. 다양성 

지역마다 음식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언어가 다른 정도가 우리나라 사투리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아예 다른 어휘가 존재하며 각 언어의 억양과 엑센트도 달라서 그게 매우 재미있다. 언어와 민족이 다양해서 그런지 본인과 다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왜 다르지?'가 아니라 '아, 다르구나!', 정도랄까? 

말이 안통해서 서로 답답한 상황에서도 본인이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겸손함에 내가 더 미안해진다. '니가 우리 문화에 적응해야지!'가 아니라 '아이쿠, 내가 너를 몰라서 미안하다'로 다가온다. 

종교의 자유인가 강요인가 모르겠지만 다양한 종교중에 정식으로 인정하는 종교는 6개인데, 각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자카르타에 있는 자카르타 대성당은 이스티크랄 모스크와 마주보고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대성당 주차 인파가 몰려서 맞은편 모스크에서 주차장을 빌려주고, 르바란 때 모스크 주차장에 차가 꽉 차면 무슬림 신도들이 대성당에 주차를 한다고 한다. 각자 다른 문화와 종교의 위계를 따지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멋지게 보인다.    


인니 매력 4. 싼 물가

수입산 시리얼이나 치즈 등은 한국과 가격이 비슷하거나 한국보다 비싸기도 하고(같은 계열의 마트나 편의점이라도 가게마다 가격이 차이가 난다), 수입 화장품은 한국보다 확실히 비싸지만, 현지 브랜드의 음식이나 화장품은 저렴한 편이라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는다면 장바구니 물가가 부담스럽지 않다. 

광열비가 저렴해서 그런지 호텔비도 저렴한 편이다. 3-4만원짜리 저렴한 숙소를 가더라도 조식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며 시설 또한 깔끔하고 편안하다. 택시비도 저렴한 편이고 인건비도 저렴하다. 

그런데 이것은 월급을 외부(인니가 아닌)에서 받는다는 전제하에 큰 장점이 될 수 있지만, 현지에서 일을 한다면 살기 팍팍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들이 발리로 몰리나보다. 인도네시아는 주재원들이 지내기에도 이만한 나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니 매력 5. 불만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산다. 

예전에 인도India 여행을 할 때 이게 경이로웠는데 여기는 인디아 인도가 아닌 인도네시아 인도Indo인데도 그게 똑같다..여기선 여행이 아니라 그런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이 이유 때문에 길에서 경적소리가 안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운 빵빵- 소리를 내긴 하는데, 그건 '나 여기 있어!' 정도의 소리라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예전에 하노이에서 한달을 지내면서 길바닥의 소음때문에 정말 미칠 지경이었는데, 여기는 길이 막혀 답답하고(나만 답답함) 갑자기 훅-치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열받아도(나만 열받음) 아무도 빠앙~을 안한다. 

뭔가 문제가 생겨도 컴플레인을 안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식당에서 음식이 비정상적으로 짜길래 혹시 소금이 두세배가 들어간건지 확인해 보고 다시 만들어 달라고 컴플레인을 했는데, 같이 간 일행들이 모두 미안해했다. 불만을 제기하지 않으니 발전이 없는 것 같은데, 한편으론 진상 고객이나 갑질이 없으니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인도네시아 타임이 있어 본인들도 자주 늦으니 상대가 늦는 것에 대해서도 너그럽다. 

어찌보면 여유로워서 좋다......고 하다가도 답답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 될 것 같다. 


여행지라면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골라서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상 파견된 국가이니 만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궈져서 조금만 힘들어도 더 많이 힘들고 살면서 생기는 작은 불만도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더 찾아보면서 여기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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