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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Jul 22. 2024

제 일정에 참견해 주세요

전지적 참견 시점의 폐단인가  

나는야 프로 불편러(하지만 불편해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언젠가부터 자주 가는 여행 카페에서 보이는 세 단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참견. 추천. 나눔

내가 질색을 하니까 미친 알고리즘이 일부러 나에게만 더 보여주는 건가? 미친 것은 난가?   


- 3박4일 (지역 이름)일정 참견해 주세요

- 고수님들 일정 참견 마구마구 부탁드려요  

- (지역 이름)맛집 추천해 주세요

- 아이와 둘이 급하게 가는데 숙소 좀 추천해 주세요


나름대로 겸손하게, 예의를 갖추어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참견'이라는 말이 마뜩잖다. 예전엔 의견이나 조언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TV 프로그램 전참시 때문인지 '참견해 주세요'가 너무 자주 나와 불쾌할 지경이다. 추천과 나눔은 제공하는 쪽에서 스스로 올리는 것인데 그것을 요구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참견 대신 의견, 조언을 쓴다 하더라도

도대체

본인들의 여행 일정인데 왜! 얼굴도 모르는 남들에게 확인 받으려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숙제를 확인받는 학생도 아니고, 회사 업무를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여행 일정을 대체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컨펌 받고 싶어 하는 것인가 싶어 초반엔 글을 몇 개 클릭해 보았다. 의외로 촘촘하게 짜여진 일정을 내밀며 이게 정말 괜찮은 지를 묻고 있었다.

...K여행자들은 여행을 갈 때조차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마음이 놓이는 건가 싶어서 이번엔 조금 서글퍼진다.

 



최근 2년간 가장 자주 드나들었던 곳은 인도네시아 여행 카페인데, 초반엔 보석같은 정보가 아주 많았다.

우연히 찾았는데 너무 좋아서 공유하고 싶다는 맛집 정보나, 직접 가보고 추천해 주는 숙소 정보들을 보면서 마우스 몇 번을 클릭하고 얻는 대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발리에 장기간 체류하던 친구는 그 카페에서 '가져왔던 한국 음식이 남았는데 귀국하면서 무료로 나누겠다'는 글을 보고 달려가 귀한 한국 음식을 얻어왔다며 고마워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눔을 요구하는 글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남은 물품을 나누어 주었던 훈훈한 의도가 변질되어, 물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나눠 달라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또 착한 한국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주었다. '제가 많이 가져왔어요, 어디 어디로 오시면 드릴게요.'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봤던 게시글은 발리의 고급 리조트 내에서 다른 투숙객들에게 생리대나 샤워 필터가 있으면 좀 나눠달라고 하는 구걸의 글이었다. 필요할 것 같으면 준비를 해 오거나, 깜빡 했으면 현지에서 구할 생각을 해야지, 남들은 돈 주고 사 온 물건을 나눠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글을 보며 기가 찼다.

구걸의 글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카페 내 자정운동을 통해 잠잠해진 것 같다.


물품을 나눠달라는 글은 줄어 들었으나 지식 나눔을 요구하는 글은 여전하다.

추천을 해 달라는 글인데, 본인이 어디로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좋은 숙소나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글은 너무도 뻔뻔하게 느껴진다. 이미 카페 게시물이나 블로그에서 좋은 정보를 공유해 주는 감사한 글들이 많으니 검색만 좀 해 보면 추릴 수 있는데, 본인 글에 댓글로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거저먹겠다는 의도로 느껴진다.

억지로 긍정적인 효과를 찾아보자면, 정보 공유가 조금 더 간단히/쉽게 이루어 진다는 장점은 있다.

직접 다녀온 지역에 대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게시글 쓰기는 귀찮아도 댓글 정도는 달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천을 요구하는 글은 아무래도 게으르고 뻔뻔해 보인다.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다른 이들이 모두 가는 곳을 내가 모르고 지나쳤다면,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한다고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정보가 넘치는 시대인 만큼 시간이 없다면 모를까 모르고 지나칠 리는 거의 없지만)

일정을 어떻게 짜야할 지 모르겠다면 다른 이들이 감사히 공유해주는 여행 일정 예시를 참고는 하되 그것을 축으로 본인들만의 일정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남들의 확인 같은 것은 안 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 일정이 빠듯한 것인지 가능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구글맵을 통해 경로를 검색해 보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검색창에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 보면 된다. 대부분의 장소는 이동 경로와 소요 시간까지 아주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렇게 검색하는 것 마저 귀찮다면 그냥 방에서 유튜브를 보는 것이 어떨까.   




좁은 한반도에 올망졸망 모여사는 우리 한국인(나 포함)들은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보다 해외 여행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 같다. 연중 아무때나 휴가를 내거나 한번에 장기간 연차를 쓰기도 눈치가 보인다. 혹여 그게 가능하다 치더라도 파트너의 회사 사정 아니면 아이의 방학 기간과 맞아야 하니 여름휴가는 결국 남들 다 떠나는 7말8초가 되어버리는 거다.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해외로 가다보니 비행 시간과 소요 시간, 그리고 비용까지 적당한 항공 노선을 고르고 한국인들의 위생 기준에 적합하고 가성비도 좋은 숙소를 선택하면 경기도 다낭시와 대한민국 후쿠오카시 효과가 나타난다.

모처럼 해외를 나간 만큼 한국인들과 마주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현지인들, 최소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눈치 좀 안보고 편하게 행동하고 싶지만 세계 어딜가도 한국인들이 있다...하지만 그곳에서 스치는 옆자리의 우리 동포들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끼리 서로 미워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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