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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22. 2022

당신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에 대하여

불필요해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 필요하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타이어 마찰음' 이라고 표시된 자막이 웃기다고, 굳이 안 넣어도 되지 않냐라는 글이 있었다. 특정인을 비판하고 싶지 않지만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필요 없는 상황설명이기에 그런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상황 이해를 위해 조금 더 필요한 설명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긴박한 숨소리’, ‘떨리는 목소리’ 등 자막과 함께라면 조금 더 이해가 가능한 상황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부수적인 자막 기능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나의 오빠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아빠와 사극을 종종 즐겨보았다. 허준, 태조 왕건같이 나름 유명했던 사극들을 함께보고 싶었는데 현대극은 쓰는 말도 익숙하고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은데 사극은 생소한 용어들로 인해 접근이 어려웠다. 결국 나는 책으로만 접했고 온 국민의 절반 이상이 봤던 유명한 드라마들을 포기했던 기억들이 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는 자막이라는 기능만 있었더라면 나도 사극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다. 자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자막이 없었더라면 시도조차 못해봤을 것이기에 자막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청각장애인들이 문화적인 것들을 즐기는 부분에 있어 자막이 없기에, 상황설명이 없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이런 현상은 문화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교육의 측면에서도 결정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강의다. 요새는 비대면이고, 스타강사들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자막이 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영역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자막과 마찬가지로 교육에 있어서도 조금은 소외됨을 느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실 자막의 존재가 청각장애인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주변의 육아맘들로부터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자막이 나오는 티브이를 시청한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도 한다. 이처럼 부가적인 기능이 청각장애인이라는 특정 대상뿐만 아니라 넓은 범위에 혜택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최근 장애인 시위로 출근길 서울 지하철 운행에 차질이 있다는 기사가 자주 나왔다. 비장애인들이 당연히 누리던 이동권이라는 수단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의 시위로서 ‘출근길에 민폐다’라는 의견들을 상당히 많이 봤던 걸로 기억한다. 이 부분도 자막과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의 눈에는 부가적으로 필요한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가 지체장애인들에게는 이동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간 진행되어 왔던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로 지체장애인만 득을 본 것은 아니다. 노인이나 부상자 같이 교통약자들 또한 역시 그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일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사실 이해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 또한 품어서 함께 가는 것이 올바른 사회라고 믿기에 이러한 시위에도 응원과 배려를 보내고 싶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나 수어 서비스 또한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을 요구한 자리에 피어난 꽃이기 때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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