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품은 기억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여름이 되면 복숭아의 향기가 짙게 밀려드는 영화가 있다. 바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잔상을 남기는 영화는 흔치 않다.
푸르른 들판, 강물, 이탈리아의 고즈넉한 마을, 예쁜 별장과 정원, 피아노, 책, 여름햇살, 자전거, 청춘의 열기..
그 모든 것들은 오마주처럼 하나하나 아름답게 화면을 가득 채우고,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살아 넘치는 생이 있고, 기억을 시간으로 품는 서사가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깊게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Call me by your name.
이 문장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받아들이는 사랑의 선언이다. 이 말은 극대화된 친밀감을 상징한다며 원작자 안드레 아치만은 이렇게 말했다.
“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환영하는 것.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의 ‘다름’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
그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고,
그의 이름으로 불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는 세계는, 단순한 애정의 표현을 넘어선다.
내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고, 당신의 이름이 곧 내 이름이 되는 깊은 공명에 대한 이야기다.
자연스러우려면 진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보통 영화는 장면 단위로 모자이크처럼 촬영되지만, 이 영화는 6주 동안 영화의 이야기 순서 그대로 촬영되었다.
이 영화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덕분에 관객은 만들어진 감정이 아니라, 배우들의 삶 속에 녹아든 감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엘리오는 더없이 반짝이는 엘리오였고, 올리버와 그의 부모까지도 마치 원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감독은 이태리 크레마에 편한 집 한 채를 얻어 그곳이 모두의 엘도라도가 되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모든 스탭과 출연진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고, 영화가 끝난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티모시는 촬영 한 달 반 전부터 이탈리아에 머물며 기타, 피아노, 이탈리아어를 익혔다.
그는 이미 엘리오로 살아가기 시작한 셈이었다. 촬영 3주 전에 도착한 올리버역의 아미 해머와도 시간을 함께 보내며 둘 사이의 온도를 현실처럼 쌓아가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시간들은 결국 그들에게 진짜 기억이 되었다. 그곳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경험은 자신의 일부가 되었고 이렇게까지 완전히 몰입한 작품은 처음이었다고 티모시는 전한다.
시간을 품는다는 것은 결국 기억할 무언가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도 나를 기억해야 ‘나’로 존재할 수 있고, 공동체 또한 기억의 축적 위에서 비로소 역사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모든 것의 정체성은 기억하고 있는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철학자 김동규는 말한다.
무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 그 자국이 마음에 깊은 흔적으로 남겨지면 그것이 곧 ‘기억’이다.
기억은 시간을 통과하고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망각되지 않는 특별함을 지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언제까지고 머물러주진 않는다.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놓치고, 마음속에서 그 특별함마저 떠나보내는 순간, 기록조차 없다면 모든 것은 결국 망각의 심연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 영화는 그런 기억될 순간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시간을 고이 품어낸 결과물이다. 그 오롯한 시간은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으며 이 작품만의 고유한 특별함으로 태어났다.
영화는 시간예술이다. 여러 풍경과 대사, 그리고 음악이 서로를 감싸며 완성된 장면 하나하나는 그 순간들의 기록이 되어 <Call me by your name>이라는 기억으로 우리에게 선물이 되었다.
엘리오의 부모가 엘리오와 올리버에게 주는 배려와 사랑이 인상 깊다. 처음엔 그것이 무척 낯설었다.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다시 보고 곱씹으며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마음에 남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엘리오의 부모가 엡타메롱의 이야기 한 구절을 읽어주며 엘리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조심스럽게 던지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영화의 끝자락에서 엘리오와 아버지가 나누는 깊고 묵직한 대화다.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 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때 남는 게 없단다.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프고 아프겠지만
그 감정들을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슬픔도 말이야.
감정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진짜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낯설 때가 많다.
티모시 최애 대사가 바로 이 부분 “인생의 고통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누군가를 잃어서 마음이 아프거나 슬플 때 그냥 그걸로 괜찮다. 고통이 있어도 괜찮고, 그것을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그는 받아들였다고.
티모시는 우리는 보통 감정을 절제하며 살아가도록 배우는데, 그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경험에 큰 기쁨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덤덤하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건네는 이 장면도 시간을 품어냈다.
엘리오의 아버지 역을 맡은 마이클 스털버그는 6주간의 촬영 기간 동안 대본을 연구하며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조용히 지켜보며 이 장면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는 시간으로 품으며 천천히 즐긴 것이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음악은 ‘‘Call Me by Your Name’이라는 기억을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이 영화의 고유한 정서를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목소리에 담긴 투명한 순수성에 있다.
진심에 호소하는 가사, 멜로디에 실은 그의 노래는 서늘하면서도 포근하게 스며든다.
https://youtu.be/gVVhHjyC04k?si=JAPs_bY8gTKEOHhA
Mystery of Love의 가사 중엔 이런 구절이 있다.
‘ 알렉산더의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처럼’
(Like Hephaestion, who died Alexander's lover)
헤파이스티온은 알렉산더 대왕의 참모이자, 절친이며, 심복이자 연인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무술실력을 갖췄으며, 알렉산더는 그 누구보다 그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알렉산더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땐 수프얀이 이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 것이 있다.
2023년 10월 수프얀은 <Javelin>을 발표하며, 그해 4월 세상을 떠난 자신의 파트너 에반 리차드슨(Evans Richardson IV)에게 이 앨범을 헌정했다. 절절한 사랑의 연서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처음으로 세상에 고백한 것이다. 그 문장들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래의 애도의 문장은 삶을 삶이게 하는 사랑과 진실이 묵직하고 고귀하게 담겨있다.
그는 삶, 사랑, 웃음, 호기심, 성실함, 기쁨으로 가득 찬 보석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생에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명으로,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관계가 때때로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사랑하는 사람, 특히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돌보는 것은 언제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찾았다면, 특히 힘들 때일수록 가까이서 꽉 붙잡고,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합니다. 친절하고, 강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활기차고, 현명하고, 나 자신이 되세요. 충만함과 은혜로, 경건함과 사랑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세요. 오늘은 신께서 만드신 날입니다.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헤파이스티온은 어쩌면, 에반을 향한 수프얀의 은유였을까.
〈Mystery of Love〉는 그렇게, 한 사람의 삶과 진심을 음악으로 담았기에 영화와 하나처럼 어우러진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곡이다.
눈 내리는 겨울 벽난로 앞에 앉은 엘리오.
말없이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며, 그는 마음 깊은 곳을 불태운다.
https://youtu.be/O0jzxPAuo6c?si=NVACIbPCuxoiV5kN&t=38
제목은 ‘기데온의 환상’
기데온은 구약 속 인물로 하느님이 보낸 천사조차 의심하고, 하느님마저 시험하는 보고서야만 믿는 회의론자였다. 오직 눈으로 본 것만이 진실이라는 확신. 그 믿음 위에 기데온은 존재했다.
그래서 기드온의 환상은 믿기 어려운 환상, 꿈처럼 아득한 것을 의미한다.
엘리오는 노래 속에서 묻는다.
“Is it a video?” 이것은 단지 비디오일 뿐인가요?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과거의 장면처럼, 그 사랑은 이제 단지 기억일 뿐인가 되묻는 것이다.
그리고 2절,
“ Visions of Gideon...”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이어진다. 그 사랑은 결국은 믿기 힘든 기드온의 환상처럼 남겨질 운명이었을까.
올리버는 마지막 통화에서 말했다.
“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어. “
그것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자, 기억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엘리오에게는 그 말조차 공허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는 펑펑 울지도 못한다.
눈물을 머금은 채 타들어가는 장작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떠나보낸 마음까지 불태우고 있다.
가늘게 뱉는 한숨, 젖은 눈동자, 힘겹게 다문 입술,
지금은 끝났을지라도, 사랑이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아마도 일어나야 했던 모든 일들에 여전히 향수가 있다고 티모시는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끝났고, 어쩌면 그는 망각의 불속으로 기억을 하나씩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말한다.
소설 속 이 장면의 엘리오의 감정을 나레이션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고. 대신 영화를 감싸는 목소리의 음악이라면,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수프얀의 목소리에서 순수함을 발견했고 복잡하면서도 직접적인 가사에 매료되어 대본을 보냈다.
수프얀은 대본과 원작 소설을 읽으며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 이 두 곡을 썼다.
몇 달간의 작업 끝에, 촬영 시작 일주일 전 그 곡들은 크레마에 도착했고,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이 곡을 듣자마자 마지막 장면에 넣어야겠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과정조차 영화처럼 아름답다.
모든 예술은 기억에서 시작된다.
뮤즈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보내주는 신이다. 그리고 그 뮤즈를 낳은 어머니는, 기억의 신 므네모쉬네(라틴어 Memoria)다. 예술의 원천은 결국 기억에 있다는 뜻이다.
장면과 음악이 잘 만날 때 우리는 그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음악이 잊고 있던 그 순간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시간을 품어 기억이 된 영화 Call me by your name.
나는 이 찬란했던 여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음악은 추억을 지배하고
추억은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은 기억한다
그 모든 순간을
『 슬프고 아름다운 비터스위트 』 24편 - '시간을 품은 기억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리고 수프얀 스티븐스'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참고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280
https://youtu.be/tqy0YIT4oTo?si=Bs9SMqKxZ1Qle2gR
김동규 - <기억과 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