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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24. 2024

임윤찬의 이별의 곡, 슬픔 | 그가 영감 받은 피아노곡

깨달음엔 숏컷이 없다



요즘 피아노 솔로 곡들을 자주 듣고 있다. 워낙 감상을 좋아하는 터라 듣는 귀는 취향에 맞는 것들을 저절로 찾아가게 된다. 그와는 별개로 내 손에서 나온 연주를 듣는 귀는 괴롭기도 하다. 전문연주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연주력은 필요하다. 작곡을 위해 하는 연주를 할 땐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표현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작곡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니 100%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작곡은 주 악기의 기술력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연주자로서 연습을 한 시간들은 과연 있었나? 이제 와서야 떠올려보니 거의 없는 듯하다.  굳이 따지자면 7살부터 배운 3년간의 시간이 전부가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내 실력과 상관없이 내 손에서 더 다양한 곡들을 느끼고 싶었기에 학원수업은 답답하고 아쉬웠다.  난 소나티네 저어~~ 기 뒤 페이지의 다른 곡을 배우고 싶은데.. 모차르트 저 곡 쳐보니 좋던데 대체 언제 배울 수 있는 걸까.. 아빠가 틀어줬던 베토벤 저 곡을 배우고 싶은데..  그러니 하농과 체르니 시간이 그다지도 싫었던 것이다.  행여나 혼자 쳐봤던 것을 피아노학원에서 배우는 날엔 혼날까 봐 안 쳐본 사람처럼 있던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피아노 선생님이 미국으로 가시게 되면서, 좋아하면서도 지겹게 배우던 피아노를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그 이후 호기롭게, 내게 어려운 수준의 곡이라해도 곡이 좋다면 악보들을 구해다가 어떻게든 그 음을 눌러보고 좌절하면서도 혼자 연주하는 시간을 더 많이 즐겼다. '어떻게' 연주하느냐보다, 그냥 그 음을 눌렀다! 가 더 재밌던 어릴 때. 언젠간 아빠가 가곡집, 영화음악 피아노 악보를 사다 주셨던 것도 좋았던 이유가 그것이다. 내 실력을 떠나서 새로운 음악들이 내게 다가온다는 기쁨이 훨씬 컸으니까.


음악이 내게 없던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돌고 돌아와 보니, 결국 표현하기 위해서, 더 깊고 다양한 작곡을 위해서, 다양한 곡들의 음을 손끝으로 느끼기 위해서도 일정 수준이상의 연주력도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깨달음엔 숏컷이 없다. 하농 등 손가락 연습교재로 쌓아 올리는 그 시간의 육중한 두께감이 어떤 결과로 다가가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꾸준함 성실함이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괴로운 내 연주는 한 켠으로 치우고, 전문연주자를 불러서 녹음하고 싶은 열망도 공존하는 인간의 아이러니.. 역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는 행동뿐이다. 

피아노 솔로 템포와 셈여림 표현에 집중해 보고 있다. 하지만 결과물이 계속 맘에 들지 않아서 연습을 잠시 멈추고 피아노 솔로곡들을 듣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임윤찬이 소개하는 피아노 곡들을 듣게 되었다.


아, 임윤찬은 역시 자기만이 구축하는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반짝이는 피아니스트구나..라고 생각했다.평소 연주에서도 가감 없이 생동감이 넘치고, 찬란하고 아름답게 뛰는 심장에 젖어드는 그만의 연주들. 이렇게 임윤찬이 영감 받은 피아노곡들을 쭉 듣고 있으니 더욱더 그 생각이 확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호로비츠가 젊었을 때엔 임윤찬 같은 연주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주로 20세기 초반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이다. 빈티지한 사운드도 그렇지만, 그때의 시기만이 나올 수 있었던 연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고 그 개성이 예술로 승화되어 고유한 음악이 되는 연주 말이다.

2024년 요즘의 시선에선 때론 부자연스럽다고 느낄지 모를 사유의 한계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21세기로 오면서 점점 연주들이 상향평준화가 되어 완벽함에 가까워지고 있고, 잘 되고 세련된 어떤 연주라는 기준도 그에 기반한 것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이 플레이리스트를 마음을 활짝 열고서 매우 재미있게 듣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몰랐던 연주자들이다. 이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아트 테이텀의 연주도 재밌어서, 얼마 전 겨울 눈을 담으러 갔던 공원의 영상으로 만들었다. 또로롱 또로롱 낭랑한 멜로디 터치가 귀여운 새들의 움직임과 너무 잘 어우러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거나, 가장 감동을 준 곡을 모았습니다. 저를 단련시키고 영감을 준 곡들이에요.





그러던 중 지난 21일, 임윤찬의 싱글이 데카 레이블로 처음 발표되었다.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 의 ‘슬픔’ (Op.10 No.3 ‘Tristesse’)이 싱글로 선공개 된 것이다. 앨범은 4월19일 발매된다고 한다.


https://youtu.be/eLb2oln-siA?si=hvv12yV1VjcLfwKd 



임윤찬은 “알프레드 코르토, 이그나츠 프리드만, 요제프 레빈, 마크 함부르크, 세르지오 피오렌티노 등 내게 거대한 우주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쇼팽 에튀드를 연주해 왔다. 어릴 때부터 이들처럼 근본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며 “그 뿌리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으로 쇼팽 에튀드를 선택하게 됐다. 에튀드를 연습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에튀드의 노래들이 내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앞으로 이 앨범에 채워질 곡들도 궁금하다. 이 연주에 어떤 감상어구를 더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발매 이후 이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들을 뿐이다. 임윤찬은 ' 쇼팽 에튀드 안에는 대지의 신음, 나이 든 이의 회한, 사랑의 편지, 그리움과 먹먹함 그리고 자유 같은 여러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평소 시를 즐겨 읽는 그의 생각, 그리고 쇼팽피협2번곡을 연주하며 영감 받았다고 말한 시 한 편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 시는 음악과 비슷하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내면의 감정을 자극하고, 음악을 통해 그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시와 음악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 노란 장미를

어제 그 소년이 내게 주었다.

오늘 그 장미를 들고

소년의 무덤으로 간다.


꽃잎에는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다.

오늘 눈물인 이것

어제 이슬이던 것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 노란 장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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