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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May 04. 2023

모두가 즐거운 페스티발을 만드는 사람들

프랑스 브르타뉴의 축제 연합

어릴 적 들었던 가수 엄정화의 노래 페스티발의 가사 덕분인지 나에게 페스티발은 늘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마법의 단어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일상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페스티발은 노랫말 그대로 움츠린 어깨를 펴고 이 세상 속에 힘든 일을 모두 지워버리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했다. 한껏 들뜬 사람들과 심장을 울리게 하는 음악과 춤, 그리고 지친 몸을 달래주는 각종 먹거리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축제들이 많아 그 특징을 몇 개의 단어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페스티발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 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발은 우리의 일상에서 큰 화두가 되는 문제를 피할 수는 없었다. 사실 모두가 즐거워야 하는 페스티발에서 모두가 즐겁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모두는 축제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축제가 열리는 지역 사회와 자연환경까지 전부를 포함할 필요성이 있다. 어쩌면 그 특별함 때문에 더욱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을 환경 문제는 내게 페스티발의 마법에 대해 조금씩 의심을 갖게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열린 한 공연 예술 비엔날레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지만 그 어느 행사보다 반가운 프로그램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제 일상 곳곳에서 쉽게 친환경,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의 대안적 사회를 위한 움직임을 만날 수 있었고, 문화 예술계에서도 이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문화 행사를 주제로 두 명의 참가자가 발표를 하고 있었다. 주제에 걸맞게 대나무가 동그랗게 둘러싼 행사장은 작지만 아늑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르타뉴 지방에 본거지를 둔 축제 연합(le Collectif des festivals) 어소시에이션을 알게 되었다. 페스티발의 마법을 다시 찾기 위해 지난 10월 어소시에이션의 사무실이 있는 헨느(Rennes)를 찾았다.


헨느는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로, 다양한 문화 행사 덕에 익히 들어 친숙한 도시이기도 했다. 축제 연합 어소시에이션의 사무실은 시내 근처에 위치한 브르타뉴 지역 정보 센터(CRIJB)에 있었다. 유리 벽면을 메운 독특한 그림이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공동 사무실에서 어소시에이션의 커뮤니케이션과 행정 담당자인 에밀리를 만날 수 있었다.


« 저희는 브르타뉴 지방에 자리 잡은 28개의 축제들이 모여 만든 어소시에이션입니다. 2005년에 6개의 페스티벌로 시작해서 지난 9월에 28번째 축제가 가입하며 총 28개가 되었죠. 현대음악, 전통음악, 연극, 사진 등 각양각색의 주제와 규모와 예산이 제각각 다른 다양한 축제들이지만 우리는 하나의 문제의식과 도전을 위해 모였습니다. »


브르타뉴 축제 연합의 에밀리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 브르타뉴의 축제 기획자들은 어떻게 하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으로 줄여 친환경적인 문화 행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환경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축제를 만들자는 취지로 헌장을 작성하고 6개의 페스티벌이 서명했다. 연합의 시작에는 브르타뉴 지방청과 아뎀 브르타뉴(ADEME, Agence de l’environnement et de la maîtrise de l’énergie)가 함께 있었다. 브르타뉴 지방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방법으로 각각의 축제를 일일이 지원하는 대신 연합에 소속된 직원을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연합을 통해 지속 가능성이 지역 축제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축제 연합을 지원했다. 아뎀 브르타뉴는 교통, 에너지 그리고 쓰레기를 관리하는 중앙 정부처의 지방 기관으로, 축제 사무처가 직접 할 수 없는 기술적인 문제들을 도와준다. 두 공공 기관의 경제적, 기술적 도움은 지금까지도 축제 연합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것이 지금의 축제 연합의 시작이었다. 2008년 본격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의 형태를 갖춘 후 점점 더 많은 축제가 그들과 뜻을 함께 했다. 지금은 28개의 축제가 연합에 가입했고, 어소시에이션의 직원도 4명으로 늘었다.


«우리의 미션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연합에 가입한 축제들이 지속 가능한 움직임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속 가능한 문화 행사를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리의 정보와 자원을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각각의 축제는 독립적으로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이들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가치를 축제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소시에이션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모든 축제는 3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다른 축제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서로의 축제를 직접 경험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고 그들의 시스템을 공유한다. 물론 축제에 대한 평가도 함께 한다. 어소시에이션이 헌장을 통해 축제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큼이나 축제들 간의 교류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어소시에이션은 어떻게 하면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또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더 책임감 있는 문화 행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물론 어소시에이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뎀과 같은 다양한 파트너들과 머리를 맞대어 방법을 찾는다. 그 고민의 결과물을 축제들과 공유하며 점점 나은 축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이들의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합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가치관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한다.


« 지난번 회의에서 향후 3년 동안 세 개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어요. 에너지와 먹거리, 그리고 인적 자원이에요. 특히 인적 자원은 쉽지 않은 문제였어요. 이 문제의 주제가 바로 우리 스스로이기 때문에 다들 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거든요. 하지만 우리의 목표에 인적 자원을 포함하기로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


에밀리는 인적 자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스로 복잡한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문화계는 일반적으로 보수가 높지는 않지만 열정과 가치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축제를 준비할 때는 일 년 동안 바쁘게 달리며 축제 때 절정을 맞이하는 그들의 열정이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페스티벌블루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지속적인 열정과 동기 부여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소시에이션은 인적 자원이라는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축제를 준비하는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업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환경을, 그리고 팀이 잘 어우러져 더 나은 성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이를 위해 특별 상담가를 초빙하고, 내년 1월에는 축제의 조직도를 공유하며 각 팀의 문제가 무엇이고 또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 더 좋은 조직 문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먹거리 문제는 축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레기, 건강, 지역 농산물 등 지속 가능성과 관련해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 에밀리의 생각이다. 그녀의 말대로 어소시에이션은 다양하게 이 문제에 접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12월에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어떤 식재료로 음식을 준비할 것이고, 어떻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것인가, 그리고 유통과정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축제 내의 인력을 통해 직접 해결하는 방법, 아니면 가치관을 함께 할 수 있는 푸드 트럭을 부르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지역 농산물과 유기농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음식의 재료만큼 중요한 것은 음식을 담는 용기에 대한 문제인데, 프랑스는 2020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의 사용을 전면 금지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는 축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프랑스의 많은 축제에서는 재활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한다. 하지만 에밀리는 이 또한 환경 문제가 크다고 지적한다. 보통 축제에서 사용되는 재활용 컵에는 해당 연도의 컨셉에 맞는 예쁜 무늬나 축제의 마크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많은 방문객들이 이 컵을 되돌려 주지 않고 집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는 매년 많은 양의 플라스틱 컵을 생산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재활용 컵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경우이다. 그래서 에밀리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람들에게 소장 욕구를 부르지 않는 어떤 무늬도 없는 플라스틱 컵을 제시했다. 어소시에이션은 몇 해 전 이에 대한 짧은 보고서와 클립 영상을 제작했는데, 현장 경험과 세심한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문제는 그 무엇보다 기술적 문제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주제이다. 그래서 더욱 외부 기관과의 협력이 빛을 발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어소시에이션은 올여름 에너지를 주제로 두 개의 클립 영상을 촬영했다. 헨느시의 지원으로 에너지 전문가가 한 축제를 방문해 에너지 사용 현황을 진단하고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조언을 해주었고, 이 현장을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LED 조명을 사용하는 또 다른 축제에서는 그린라이트를 주제로 촬영을 했다. 에밀리는 현재 편집 중인 이 영상들을 통해 다른 축제들이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태양판을 설치한 트럭을 불러 축제에서 태양에너지를 사용한다거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전기생산업체와 계약을 맺는 등 친환경 에너지를 위한 직접적인 방법도 실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세 가지의 주제 말고도 교통, 소음 문제, 장애인을 위한 시설, 그리고 예산 마련을 위한 대안적 방법 등 넓은 주제와 함께 지속 가능한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소시에이션과 함께 하는 든든한 파트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파트너는 크게 재정 지원과 기술, 실무 지원을 하는 파트너로 나눌 수 있다. 재정 지원 파트너는 작게는 헨느시부터, 브르타뉴에 속한 네 개의 도, 브르타뉴 지방, 그리고 중앙 정부까지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앙 정부의 부속 기관들이 장애인을 위한 시설, 영상 촬영 등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정부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부서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소시에이션은 2017년 예산으로 총 180,000유로를 배정받았다. 이는 한화로 2억 원이 훌쩍 넘는 큰 액수이다. 그리고 기술과 실무를 도와주는 파트너들은 아뎀과 같은 공공기관과 시민 단체들이다. 재정적 지원도 함께 하는 아뎀은 에너지부터 쓰레기 분리수거, 대중교통 이용 등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지속 가능한 축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 우리의 헌장은 리우회의에서 채택된 아젠다 21과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페스티발을 통해 환경, 사회, 경제에 걸쳐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축제라는 특별한 행사 속에서 대중들은 평소보다 쉽게 마음을 엽니다. 그들이 지구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기 좋은 기회지요.»


아젠다 21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택된 21세기를 위한 지구환경 보전 종합계획이다. 173개국의 정상들이 협의한 이 범지구적 의제를 브르타뉴의 한 어소시에이션에서 만나게 된 것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지구를 위한 움직임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더욱이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COP21과 함께 이는 더욱 활발해졌다. 하지만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이런 세계의 흐름을 접할 수는 있었지만, 일상에서 이런 움직임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가끔은, 특히나 각국의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보였고, 지구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브르타뉴의 시민들은 우리가 일상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페스티발을 통해 그들도 모르는 사이 아젠다 21의 행동 강령에 참여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밀리의 말처럼 축제는 그 특별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에 좋은 기회이다. 이것은 비단 축제뿐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 예술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COP21에 대한 뉴스를 백 번 보는 것보다 주제 의식을 가진 문화 예술을 한 번 접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깊이 와닿지 않을까? 이것이 진정한 문화 예술의 힘이고, 또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생각할 수 있는 페스티발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마법 같은 페스티발을 통해 슬픔은 잊고, 뜨거운 태양 아래 언제나 좋은 일들만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https://cjculture.org)의 해외통신원 활동을 위해 2016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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