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 이상은, 「언젠가는」
이 노랫말은 시간을 건너온 목소리다.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야 또렷해지는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사랑도, 계절도, 그리고 젊음도 그렇다. 우리는 늘 그 한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그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막이 내린 뒤 커튼콜을 보며 박수를 치듯, 사람들은 대개 젊음을 지나온 다음에야 예찬한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 혁오, 「TOMBOY」
이 노랫말은 조금 더 냉정하다. 젊음의 눈부심이 오히려 그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빛은 사물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야를 흐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 강렬한 밝기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소모된다. 나이테는 분명 자라고 있지만, 그것을 세어보는 일은 좀처럼 감당할 수가 없다. 지나치게 밝기 때문이다. 젊음은 충만하면서도, 어딘가 맹목적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두 노랫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흘러가는 시간에 기대어 있었다. 젊음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많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간 뒤에야 해석되고, 또 정리된다고. 어쩌면 낙관적인 체념이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삶을 견디는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다른 목소리를 만났다.
“저는 꽃이 핀다는 게 뭔지 체감을 하고 있어요. 왜 꽃다운 나이, 꽃다운 나이 하잖아요. 근데 그게 꽃이 핀다는 게 뭔지 느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얘기거든요. 근데 대부분 그걸 지나서 안다고 하잖아요. 근데 다행히 저는 느끼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꽃이 피는 시기구나. 그만큼 재밌다는 거죠. 뭘 해도 재밌다는 것이 그게 아닐까.” — 가수 이찬혁
이 말은 나를 멈춰 세웠다. 지금 이 순간을 ‘지나간 뒤’가 아니라 ‘지나가는 중’에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어떤 재능처럼 보였다. 혹은 감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꽃. 그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조금은 의심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지금의 내가 지금을 인식하는 것. 눈부심 속에서 눈을 뜨는 일. 대부분은 알지 못한 채 흘러가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자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선택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눈부심을 이유로 보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보려 하지 않았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눈을 조금 더 뜨면, 이 빛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분명히 마주할 수 있다.
결국 현재를 인식하는 일에는 약간의 용기와 의식이 필요하다. 이 순간이 언젠가의 회상이 되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 일.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지나가고 있는지. 그렇게 두려움 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은 더 이상 스쳐가는 통과점이 아닌 하나의 장면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먼 훗날의 나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고, 아직 선택할 수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이미 어떤 빛을 머금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려 한다. 지나간 뒤에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을 통과하는 지점에서도 알아볼 수 있기를. 그것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불완전한 채로 즐길 줄 아는 지금이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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