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부르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남편’ 대신 ‘신랑’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아주 사소하다. ‘남편’을 풀어 말하면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뒤, 그 단어가 더 이상 편안하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 귀에 들어온 해석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는 줄곧 ‘신랑’이었다. 결혼 초기도 아닌데 왜 아직도 그렇게 부르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호칭은 이미 내 마음이 기울어진 쪽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부르는 말에는 뜻보다 방향이 먼저 드러날 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설명하기보다,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방식 말이다.
그 때문인지 신랑은 한동안 나를 ‘각시’라는 이름으로 저장하고 불렀다. 그러다 어느 날, 연락처 이름이 ‘아내 미내’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 이름과 ‘아내’라는 단어가 입에 착 붙고 운율이 살아 있다며 바꿔 놓은 것이다. 재치 어린 유머와 내 이름을 향한 애정이 함께 배어 있어, 그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말 하나에도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스며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안사람, 집사람, 와이프, 그리고 엄마. 아내를 부르는 말은 이렇게 다양하다. 어느 하나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호칭들 사이에서 부부 사이에 놓여 있던 ‘사람’이 어느새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역할이 이름보다 먼저 불릴 때, 관계의 중심도 살짝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를 부르는 말에는 분명 온도와 거리가 있다.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한 박자 숨을 고르게 하고, 어떤 말은 생각할 틈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관계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꽤 정확하게 드러낸다. 말은 마음의 요약본이라기보다,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의 위치를 가리키는 표지판에 가깝다.
아빠와 아버지가 다르고, 누나와 누님이 다르며, 아줌마와 여사님이 다른 것처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도, 그 말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결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호칭은 고개를 곧게 세운 채 부르게 하고, 어떤 호칭은 어깨를 살짝 내려놓게 한다.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 사이에서 말을 고른다. 사실은 사람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유지하고 싶은 거리를 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텔레비전에서는 부부 관계 개선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자주 방영한다. 시청하다 보면, 화면 속 부부들이 서로를 다정하게 부르는 장면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대화의 첫머리는 대개 “야”, “너” 같은 말로 시작되고, 때로는 이름조차 생략된 거친 표현이 호칭을 대신한다. 그 장면들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다툼의 내용 때문이기보다 이미 부름의 방식에서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말이, 관계의 손을 먼저 놓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호칭이 관계를 규정한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기울어진 마음이 말의 선택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말은 언제나 마음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그 늦음 속에는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왔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떤 호칭을 쓰고 있는지는 관계의 현재라기보다, 마음의 궤적에 가깝다.
내가 속한 글쓰기 모임에서는 서로를 수년째 ‘님’이라고 부른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호칭이 관계의 밀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친해졌다는 이유로 경계를 성급히 허물지 않고, 오래 보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 이름 뒤에 붙은 짧은 호칭 하나가, 서로를 존중하며 대하겠다는 태도로 남아 있다.
어쩌면 호칭이란 상대를 부르는 말이기 이전에, 나 자신에게 거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이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지, 이 관계를 얼마나 신중하게 품을 것인지에 대한 다짐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호칭은 관계의 결과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다.
몇 년 후면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신혼부부처럼 ‘신랑’이라 부른다. 이 말이 우리 부부의 관계를 얼마나 정확히 설명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호칭을 선택하는 동안만큼은, 관계를 마모시키지 않겠다는 쪽에 내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서로를 부르는 말은 작고 가볍지만, 그 말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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