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 중반을 넘긴 지금에서야, ‘어머님, 여사님, 아줌마’. 나이 든 여인을 부르는 모든 호칭이 더는 낯설지가 않다. 이제는 그 모든 이름이 내 몫이라 여겨지고,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서른을 갓 넘겼을 무렵, ‘아줌마’라는 말은 얼굴이 확 달아오를 만큼 낯설고 어색한 호칭이었다. 내 삶과는 아직 거리가 먼 듯했기 때문이다.
서른둘에 아이를 낳고서, 술자리란 한동안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사라진 풍경이었다. 가끔 시간을 내어 친구들을 만나도, 아이가 마음 한가운데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어 술 한 잔 기울일 여유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 즈음, 비로소 그 작은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밤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네온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 졌다. 며칠을 마음속으로 계획한 작은 일탈, 신랑과 함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로 나섰다. 아이와 함께하는 외출이었지만,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 입었다. 내 안의 ‘여자’였던 내가, 잠시나마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분 좋게 마신 맥주 한 잔, 두 잔은 자꾸 화장실을 찾게 만들었다. 조금만 서둘러 화장실로 움직였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아끼지 않고 들이켰다. 결국 급하게 찾은 여자 화장실 문 앞에는 긴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조급해졌다. 그때 남자 화장실 문 틈 너머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여자 화장실 앞의 혼잡과는 다르게 남자 화장실은 아무도 없었다. 재빨리 빈칸에 들어가 조용히 숨을 돌렸다. 하지만 안도의 숨을 쉬며 나가려던 찰나, 화장실을 들어서는 한 남자와 문턱에서 마주쳤다. 남자 화장실인데, 여자가 나오는 광경에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정말 죄송해요, 여자 화장실은 줄이 너무 길고, 제가 너무 급해서 들어왔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아줌마, 뭐예요? 아줌마, 여긴 남자 화장실이에요. 아줌마, 미쳤어요?”
다그치는 그의 말보다 단숨에 쏟아낸 ‘아줌마’라는 단어에 잠시 당황했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아줌마’라는 말을 무려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 단어의 무게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연거푸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에 귀 기울일 생각조차 없었다.
“아줌마, 여기 남자 화장실이에요. 아줌마 나가세요.”
그의 시선에도, 말투에도 사과를 받아줄 틈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나를 아프게 한 건 그의 다그침이 아니라, 나를 불렀던 그 이름이었다.
이십 대 초반쯤으로 보였던 남자에게 유모차를 끌고 들어왔던 여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줌마’였을 것이다. 그러나 말끝마다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그 반복 속에 깃든 얕잡음과 조롱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젊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쥔 채, 잘못한 나를 향해 벌을 내리듯, 상처를 주듯, 그 단어를 휘둘렀다. 그는 알고 있을까. 그 오만한 젊음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그 무기도 언젠가는 녹이 슬고 무뎌져, 더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없이 둔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젊음은 뜨겁고, 강하고, 때로는 눈부시도록 열정적이지만, 누군가를 태워버릴 만큼의 불덩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바란다. 젊음이 잔인한 무기가 되지 않기를. 마음과 인성을 함께 가꾸는 겸손한 꽃이 되기를. 그런 아름다운 꽃이 이 세상에 더 많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이가 들어도 젊음 앞에 주눅 들지 않도록, 무례함에 맞설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단련하고 교양을 쌓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제부턴가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트라우마라고 하기엔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그 단어와 그때의 당혹스러움이 언제나 짝을 이뤄 내 안에 남아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가혹할 만큼 같은 속도로 흐른다. 갓난아이는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을 지나 어른이 된다. 그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푸른 잎이 곧 바람에 물들어 가을로 흘러가듯, 그도 언젠가 누군가의 ‘아저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