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죽어 있었다.
아파트 화단 앞 지상 주차장,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새는 죽어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누워 있었을까.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인데, 내 눈에만 죽은 새가 보이는 걸까. 주차 라인이 그려진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새가 너무 가여워 보였다. 만약 죽기 전, 조금만 더 힘을 내어 화단 쪽으로 갔더라면, 나무와 풀, 흙과 함께 고요히 사라졌을 텐데. 죽음이란 그렇게 자연스럽고 평화로워야 할 텐데, 그 새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방치된 채 놓여 있었다.
나는 조류공포증이 있다. 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퍼덕이는 날개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뛰고, 내게 가까이 오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새를 향한 감정을 무서움보다는 공존과 이해라는 곳으로 조금씩 이끌어가게 만든다.
죽은 새를 그냥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뛰어가 삽과 비닐장갑, 신문지 몇 장을 챙겨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다. 그곳에 도착하자, 경비 아저씨 두 분이 비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아저씨들에게 말했다. “새가 죽어 있어요.”
그중 한 아저씨가 내가 가리킨 곳을 보더니,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아… 알겠어요. 곧 수거차가 오니 그때 치울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저려왔다. 수거차라니… 아무래도 내가 새를 화단으로 옮겨 묻어줘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그러던 중, 다른 한 아저씨가 멀리서 큰 삽을 들고 오셨다. 아저씨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해 온 작은 삽과 비닐장갑, 신문지를 보고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여러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무사히 화단에 묻힌 새를 떠올려 보았다. 그 새는 우리 아파트에서 자주 보던 멧비둘기였다. 독특한 울음소리로 짝을 지어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평생을 우리 아파트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 새가 마지막으로 묻힐 자리는, 수거차로 이동한 알 수 없는 쓰레기 처리장이 아닌, 이곳이어야 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인간의 존엄이란, 다른 생명체를 다스리고 보존하기 위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작은 생명체를 대할 때도 배려와 존중을 잃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크고 작은 생명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우리가 얼마나 그 생명들을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진정한 책임이 아닐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여기에 담겨 있다. 죽음은 결국, 각자의 끝이자, 또 다른 생명에게 이어지는 시작일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대하는 두 경비 아저씨가 보여준 태도는 우리가 각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선택은 그 자체로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 새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의 죽음을 대했던 태도가 나에게, 또 두 경비 아저씨에게 남긴 인상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삶은, 죽음 역시 존중하는 것에서 완성된다는 깨달음을 안고, 나는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