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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Jun 17. 2024

얼음 속에 갇힌 마음


봄의 따사로움이 끝물에 다다를 때쯤, 맛보기로 더위를 예고하듯이 6월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얼음 가득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마시고 싶어 가까운 편의점에 들렀는데, 그만 얼음컵을 떨어뜨려 바닥으로 얼음이 흩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움이 필요해 편의점 카운터를 바라보았는데 백발의 할아버지가 구부정한 허리로 서 계셨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면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다른 손님들이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빨리 얼음을 해치우고 싶었지만, 다급한 내 마음의 속도와 할아버지가 움직이는 속도는 같은 속도로 달려갈 것 같지 않았다. 또 할아버지께 민폐가 되는 상황이 죄송스러워 혼자서 상황을 수습하기로 했다. 손과 발로 흩어진 얼음을 모으고 선반의 냅킨을 이용해 바닥의 물을 닦았다. 정신없이 뒷처리를 하는데 어디선가 할아버지께서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옆에서 거들어 주고 계셨다.


“어머… 죄송해요…”

“괜찮아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순간 편의점 할아버지의 그 위로가 내 마음을 ‘쿵’하고 울렸다. 내 나이만큼 더 사신 듯한 할아버지의 세월이 느껴져서였을까. 내가 도움을 받기보다 당연히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상대가 건넨 뜻밖의 말이어서였을까. 흔하디 흔한 위로의 말이 왜 이토록 가슴을 울렸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 무언가는 6월의 초여름 기온보다 뜨거웠다.




새 얼음컵에 담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림만 그리며 지낸 요즘 내 생활을 떠올렸다.

작은 실수와 후회마저도 만들고 싶지 않아 만남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림만 그리며 지내고 있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과 자극에도 지나치게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만나야 하는 모임을 제외한 어떤 약속도 잡고 있지 않았다. 오전에 운동을 하는 것과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이외의 외출은 하지 않았다. 반성과 자책보다는 은둔이 편했고, 어찌 보면 그림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결과물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문득 이 생활이 내가 선택한 은둔이 아닌 가혹한 벌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사소한 실수조차 내 자신에게 허락할 수 없었고,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일들에 엄격한 잣대로 점수를 매기고 있었던 건 아닐지. 결국 은둔을 가장한 책망으로 나를 가둬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괜찮아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렇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에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자책과 후회, 실망의 부정적인 에너지로 완벽한 나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이 발전이고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계획된 일을 위해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에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나를 위해 조금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정확한 결과와 합당한 과정만을 요구했던 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모든 경우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인생이고 삶인데, 나부터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왜 이리 인색했던 것일까. 혹독한 기준으로 나 스스로를 죄고 누른 그간 시간들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바닥으로 쏟아진 얼음처럼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편의점 할아버지의 위로에 녹아내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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