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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Jan 25. 2022

책과 글이라는 동아줄을 붙잡은 엄마

정아은 작가의 “엄마의 독서”를 읽고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인상 깊게 읽고, 전작인 ‘엄마의 독서’를 읽어보았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 주부, 워킹맘이 일과 육아에 집안일도 당연하게 떠맡고도 ’집에서 노는‘ 존재가 된 사회 구조적, 역사적, 철학적 배경을 파헤치는 책이었다면, ’엄마의 독서‘는 다양한 책을 통해 육아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독서 일기 겸 육아 일기처럼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못하던 사람이 엄마가 된 뒤 시시각각으로 떨어져 내리는 온갖 책임에 이리저리 치이며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책‘이라는 동아줄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라는 작은 직사각형의 물건을 붙잡고 간신히 지나갔던 위태위태한 여정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다.  

라고 말한다.      


내 속을 꿰뚫고 쓴 글 같았다. 사회적인 타이틀을 모두 내려놓고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온 지난 10년 동안 나 역시,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나‘로 살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좋은 엄마‘라는 틀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래 기왕이면 살림도 잘하고, 아이도 잘 교육시키고, 남편도 잘 챙겨주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찾아오는 ’나‘에 대한 욕구를 모른 체 하며 꾹꾹 참던 시간동안 그 염증은 나날이 커져 무기력과 우울감이라는 형태로 나를 잠식하려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 역시 책을 펼쳤다. 아이들이 블록과 로봇과 잡다한 장난감으로 거실을 너저분하게 만들며 놀이에 심취해 있을 때, 나는 그저 고요히 책을 펼치면 나만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에세이 속 저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인문서의 활자 속에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책을 읽는 엄마의 모습은 허용 가능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책‘이라는 것은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그 가치가 오히려 희석된 매체이지만 여전히 우아 고상하고 정적이며 아이 정서와 교육을 책임지는 엄마라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매체였기에.

그리고 그렇게 읽던 나날들을 지나 하고 싶은 말이 차올라 글을 쓰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아직은 미약한 사유일지라도, 거친 문체로나마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리하여 오늘도 책과 글이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저자 역시 집안일과 육아에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사회 저편에 속해 있으면서 자기 발전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남편을 질투하고 미워했음에 공감했고,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다가도 한순간에 폭발하여 ’너희 계속 이러면 가출할거야‘ ’내가 하녀니‘ 하며 아이들을 협박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는 고백에 안도했다. 하하호호 함께 커피 마시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엄마들 사이에서 나만 홀로 외딴 섬처럼 겉도는 느낌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육아담을 통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나만 외롭고 나만 엉망인 느낌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육아의 서사는 사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였음을 저자가 읽은 책들을 통해 통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직사각형인 물체에서 주르륵 떨어지는, 고기라면 육즙이고 과일이라면 과즙일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연신 혀를 내밀어 받아먹게 만드는 책이었다. 다른 육아서는 읽고 나서 떨떠름한 맛이 남을 때가 있다. 엄마로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내가 이러면 안되지,  책에서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하며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흔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역시, 엄마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무조건 행복해야 하는 사람인가 하는 강박을 주어 불편했다. 그런데  책은 달랐다. 그냥 나로 살면 된다고. 굳이 아이들 앞에서 연극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 해준다. 엄마라는 자아로 살며 항상 배고프고 굶주린 느낌이었는데,  책을 읽고  허기증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애초엔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참지 못하고 서점에서 구매해왔다.  허기질 , 읽어봐야 하니까.      


마음을 부르게 해준 구절들


어떤 현상의 심장부로 들어가 그 메커니즘을 알게 되는 것, 즉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실생활에 커다란 힘을 미칠 수 있음을 최초로 알게 해준 독서 경험이었다.    p.18


여러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힘들어한 건 사실이었으나, 그는 어쨌든 사회 저편에 속해 있었다... 힘들긴 해도 결국 ’자기 발전‘으로 이어질 과정이었다.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나와는 달리. 나는 힘든 남편을 보듬어주기는커녕 그처럼 ’사치스러운 힘듦‘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슴을 앓았다.  p.51

    

일상의 곳곳에서 나는 아들에게 친구이기는커녕 시시각각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독재자였다. 때로는 내 내면에서 나온 문제를 아이에게 뒤집어 씌운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산다. 내가 네 하녀냐?”와 같은 폭언을 퍼부었다. 아예 나 자신을 독재자라고 인정하고 포기해버렸으면 마음이나 편했을 텐데, 마음 속에서 넘실거리는 이상은 잦아들 줄을 몰라, 속으로는 친구이길 꿈꾸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 미친 듯이 고뇌하면서 못난 독재자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p.123


직장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한 장소에 유폐되어 한가지 역할에만 몰두하도록 강요받으면 혼란스럽고 절망감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사회는 아이를 낳고 갑자기 변화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성들에게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건넨다. 원래 엄마됨을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는게 자연스러운건데 우울해하다니! 너는 참 이상하구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나보다. 빨리 치료를 받아 ’정상‘으로 돌아와라. 이렇게 말하며 상담기관으로 보낸다. 그러면 상담 기관들은 이 모든 것을 내방한 여성의 ’개인적 기질‘ 혹은 ’가족사에서 기원한 문제‘로 취급한다. 일개 여성에게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전격적으로 책임 지우는 사회 구조의 문제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배출구를 찾지 못한채, 자신이 정신적으로 이상하거나 나약하다고 자책하며 육아의 첫시기를 건너게 된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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