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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Jan 28. 2022

하와이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녀들의 이야기

“알로하,나의 엄마들”을 읽고

하와이하면 따스한 햇살,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가 만드는 멋진 풍광이 떠오른다. 언제쯤 갈수 있을까… 하는 투정이 그 뒤를 뒤따르고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아름다운 풍경 뒤편에 분명히 존재했을, 지금도 현재진행형일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의 슬픔, 울분, 고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삶을 그려낸다.



1900년대 초 일제 강점기 조선시대, 김해의 작은 마을에 살던 열여덟살 소녀 버들, 홍주, 송화는 신랑 사진 한장, 약간의 결혼지참금만 가지고 하와이로 향한다. 누군가는 가난을 피해 공부할수 있다는 열망을 품고, 누군가는 과부라는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살수 있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무당 손녀라는 멸시에서 벗어나겠다는 기대로. 그 시절 1000명에 달했다는 사진 신부들은 모두 제각각의 사정으로 하와이 땅을 밟는다. 조선보다는 낫겠지, 새 땅에서 신랑과 새삶을 꾸려가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채.


하지만 하와이 땅을 밟고 난 뒤 그녀들이 마주한 현실은, 들은 것 보다 많게는 30살이 많은 사탕수수 농장노동자들인 신랑과 결혼하여, 식당일,세탁,농사일로 손이 부르트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거친 삶이었다.

 

그런 삶의 질곡 속에서도, 버들, 홍주, 송화는 마음과 마음을 포갠 채 연대하며 살아간다. 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도 아이의 숨으로 자신을 채우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이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서로 엉키고 엉켜서 어떤게 저 나무의 뿌리이고 어떤게 저 나무의 가지인지 모를 ‘반얀트리’처럼.


실제로, 이금이 작가님은 재외동포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사진 신부’로 하와이로 떠난 세 소녀의 사진을 발견했고, 그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부채와 양산, 꽃을 든 세 소녀의 사진 한장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민자로 힘들게 살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독립 투쟁에 앞장선 투사들 뒤에, 그들 대신 생계를 떠맡고, 아이를 키우고, 망가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온 남편을 수발했을 이름 모를 그녀들이 있었다. 남성의 얼굴을 한 전투와 독립운동 뒤편엔, 억척스럽게 험한 일을 해치우며 가정을 지키던 여성들이 있었다. 이승만계니, 박용만계니 하며 정치적 역학 구도에 따라 계파가 나뉘고 분열되던 당시 상황에서, 그녀들은 비교적 자유로웠고, 다른 계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품어주었다. 먹거리와 잠자리, 일거리를 제공하면서.




청소년 소설을 오래 써온 작가님의 성향이 깃들어서인지,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게 흘러가지만 술술 읽히며 그 속에 주제의식은 또렷하게 살아있다. 이렇게 눈을 뗄수 없는 책을 만든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녀들은,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알로하’라는 인사말 그대로 살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두팔로 안아주는 사랑이라는 의미의 ‘레이’의 끝과 끝처럼, 그녀들은 이어져 있다. 그녀들이 전해준 강인함과 사랑을 마음에 오롯이 새기며.


버들이 딸에게 말한 것 처럼,

인자는, 나폴거라는 나비맨키로, 포롱거리는 새맨키로 살그라.


알로하, 나의 엄마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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