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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아 Jul 13. 2021

자기계발보다 자기치유가 먼저다

11년 차 자기계발서 전문 편집자가 겪고 있는 지독한 무기력에 대하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브런치에 풀어본다.


오후 2시에 어슬렁거리며 일어나는 날도 있고,

새벽에 몰래 까먹은 과자 봉지들을 치우기도 한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이러다 사회생활이란 건 아예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또다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우울증 자가진단을 해보니 우울증이다. 확실하다.

게다가 심각한 무기력증에도 시달리고 있다.


아무리 아무리 우울하고 힘들어도

뭔가를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도 세상이 다 꺼지는 것같이 힘들었는데,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산책을 하고

일상의 일들을 해내던 시절은

그나마 지금보다 나았던 것이었다니.


예전에는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도 어두웠을 거라 생각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이나 그런 거에 빠지는 거라 착각했다.

30대 후반, 그동안 참고 억눌러왔던 것들이 이렇게 날 괴롭힐 줄은 몰랐다.

어렸을 적 나에게 다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갖고 싶으면 갖고 싶다고 말하고, 기쁘면 맘껏 기뻐도 돼.


이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을 만큼

나는 감정을 억누르다 못해 '실어증' 수준으로 입을 다물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걸 어른들은 '내향적이다', '여성스럽다', '얌전하다'는 말로 포장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원해서 입을 다문 게 아니라

그것 말고는 나를 방어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비대면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풀지 못하면

어떻게든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게 되는데

그게 손톱 물어뜯기가 될 수도 있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내가 왜 그랬는가를 알게 되는 것만큼 끔찍한 건 없다.

그동안 나에 대한 탐구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내가 탐구했던 내 안에는 또 다른 나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초라하고 보기 싫은 모습으로.


상담하는 내내 나는 '수치심'을 수없이 느꼈던 어린 시절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4살짜리 어린아이는 집에 손님이 오면 맨발이 수치스러워

바로 방으로 들어가 양말을 신고 나왔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비웃었다.

내가 밥을 먹는데 쳐다보는 것도 무섭고 무안해 서럽게 울면서 자장면을 먹었던 날.

그날도 어른들은 그저 날 비웃었다.

정말 내 안에 있는 모든 용기를 끌어올려 겨우 마친 동화구연대회.

30년이 더 지나도록 얼굴이 시뻘개져 울음을 참고 있는 내 사진 한 장은 그저

놀림거리에 불과하다.

어른들은 매번 엄마공룡이 죽는 장면에서 울어야만 하는 만화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장면만 다가오면 내 앞에 다가와 내가 울기만을 기다렸다. 울면 놀리려고.

그래서 참을 수 있을 만큼 참다가 폭발하듯 울었다.

울고 나면 부끄러웠다.

나에게 우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었다.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건 수치스럽고 부끄럽다는 것을 학습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아무리 아프고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드러내면 안 되었다.

지난 30 년간 나는  감정에 대해  번도 제대로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감정은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이나 드러내는, 아주 멍청한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니까.


그동안,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지켜내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전혀 몰랐다.

존중받지 못했고 힘들었던 나날들을 외면한 채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내 어린 시절을 함께 놀렸다.

오히려 여기서 멈췄더라면 이런 무기력도 찾아오지 않았을까.


나는 그 어린아이를 전혀 위로하지 못한 게

다름 아닌 나였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진짜 힘들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상담 선생님의 나긋나긋한 위로의 말에서 알아버렸다.

내가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엄마가 없으면 아파트가 떠내려가도록 울었던 거였구나.

그래서, 농구장에서 갑자기 서러워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거였구나.

다, 어린 시절의 나. 겨우 유치원에서 한글 떼던 시절의 나 말이다.


그 후로 참기챌린지를 하듯

강아지가 죽어도 집에서 울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울다 들어오는 날들이 있었고

(알고 보니 가족 모두 그러고 있었단다)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해 연애하는 동안 그토록 상대를 괴롭혔다.








신기하게도, 나는 내 일을 항상 이렇게 표현해왔다.

브런치에 써왔든 나는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편집자로 살아왔고,

올해부터는 출판사를 창업하여 직접 책을 발행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의 팔 할은 카운슬링이야.



나는 그동안 편집자로서 일을 하면서도 '카운셀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실제로 저자들이 책을 쓰면서 참 많은 심적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책을 한 권 써낸다는 건 내 삶을 한번 정리해내는 작업이다.

또한 '글쓰기'는 내 안에 남은 상처와 치부와 마주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토해내듯 써야 하는 '초고'는, 사실 자기가 보기 싫은 내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항상 토닥여왔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내 감정을 참아내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고형-감정형 인간 중에서도, 감정이 매우 중요한 유형의 인간인데

그것을 존중받지 못해 피아노란 악기, 글쓰기, 독서, 그림 그리기 등으로 내 감정을 풀어왔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센서티브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예민하게 느껴왔고

그러다 보니 지금도 타인의 감정에 꽤 깊은 공감을 잘 해내는 편이다.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결혼, 퇴사라는 인생의 빅 이벤트 후에

점점 더 속도와 강도가 세졌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챌린지는 이어졌고

프리랜서로서 정착할 쯤 나는 사업이라는 큰 일을 벌이게 되었다.

그 사이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풍파가 몰아쳤지만

다 한 번도 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얼마 전, 내면의 만신창이가 된 내게

거의 결정타를 날린 남편과의 일로

나는 완전히 쓰러졌다.


그동안 워낙 힘겨운 일이 많았던 터라 웬만큼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후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동안 힘들어도 화를 내고 말을 할 정도의 기운은 있었던 것 같은데,

스마트폰 문자를 보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내 모습은 정말 낯설었다.


비대면 상담은 계속되었고,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원래, 상담받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인 건가요?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정상인가요?


 

선생님 말씀이, 내가 첫 몇 번의 상담에서는

나의 가슴 아픈 과거 이야기를 마치 재밌는 에피소드 얘기하듯이

신나게 풀었었는데,

최근부터 내 감정과 접속을 하기 시작한 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슬픈 얘기를 할 때 슬픈 감정이 느껴지고,

아픈 얘기를 할 때 내 목소리에도 아픔이 느껴진다고.


아마, 상담받고 처음으로 울었던 그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날 나는 내 과거 중에 정말 너무나 무서웠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험에 대해 털어놓았다.

영화 <굿 윌 헌팅>을 보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 명대사 앞에서 무너지듯 울었었는데,

그날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해주셨다.


민아 씨 잘못이 아니에요.
자기를 지키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정말 씩씩하고 멋진 사람이에요.



감정을 외면한 결과가 이렇게 처참한 것이라니.

난 이제야, 유치원에서 색연필을 잃어버리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

서럽게 울었던 이유,

크레파스를 다 쓸 때까지 자동차를 색칠하고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께

차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신나게 털어났던 이유,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 피아노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1년간 계속되었던 선생님의 폭언과 폭력,

눈물을 흘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싶어 참았던 날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바로 고소가 가능했던 수많은 '성'과 관련된 폭력의 순간들 속에서도

내 탓으로 돌리며 자책해왔던 날들.


자기계발은 포장지였다.

내가 자기계발에 미쳤던 것.

내 성장과 자립에 완전히 빠져 있었던 것.

'열정적인 사람'으로서 뭐든지 성과를 내야만 직성이 풀렸던 나는

이런 나약하고 힘든 나를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출판사를 차리고 내가 발행하고 있는 책들도

심리 분야에 감정에 집중하는 책들이다.

식이장애 치료 책 <나의 식사에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제 곧 출간될 가스라이팅 치유 워크북 <그게, 가스라이팅이야>

현재 번역 중인 원고도 상실에 관한 책.


몰랐는데, 그렇더라.

마음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나의 주 고객이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나와 만난 사람들이 치유가 되는 것 같단 말을 해주었구나.

내가 마음이 아프니, 마음 아픈 사람의 언어가 그토록 잘 들렸던 것이다.


사회에서 '힐링'을 경시하는 듯한 말을 많이 들어왔다.

우리나라에만 유독 '힐링'과 위로를 위한 책이 많이 출판된다면서.


나도 동의했었다.

실질적인 솔루션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왜 이렇게 힐링 타령인가.

그것이 '힐링'이라는 용어로 마케팅의 포인트가 되면서부터

우리에겐 위로와 위안도 사치이고 무능함을 대변하는 말이라는 의식이 생긴 것 같다.

그런 인식 자체가 점점 더 감정을 외면하게 만드는 풍토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학과 수석 졸업을 하고,

늘 어디서도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편집자로서는 베스트셀러를 기획해왔던 나.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습이 내 내면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가면이었다는 건 몰랐다.


이렇게 나는 내 상처와 마주해도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상처가 된다.


그러나 무기력 앞에서 '뭔가를 해야 된다는 강박' 만큼 끔찍한 건 없다.

그러고 보니 그 누구도 나에게 '안 해도 괜찮아'란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자꾸만 뭔가를 해야 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는 것 또한

이 무기력을 연장시키는 폭력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다그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곧 과거의 나를 용서하겠다는 뜻이다.

타인을 용서하는 것만큼이나, 과거의 나를 용서하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나는 자기연민의 단계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 그 어떤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힘이 되고,

우리 고양이들로부터 나를 용서하는 지혜를 배운다.

그 어떤 가치판단도 없는 상태를 사는 존재.


그래서, 이제 정말 내 편집자 인생에서

자기계발은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자기계발서로 포지셔닝되는 책들은 있겠지만,

나의 감정,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은 감정 잔여물들을 보게 된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치유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치유'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 또 무기력에 잠식당할지라도,

이 또한 치유의 한 과정이라 여기고 나를 다그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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