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비참함을 아름답게, 고독을 따뜻하게 -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by 나미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어른이 되면 즐겁고 행복한 일이 가득할 줄 알았다. 힘들어도 금방 해결하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난이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고난과 시련이 나를 짖누르고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는 미약한 어른의 내가 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죽지 못해서 사는걸까? 태어났으니 사는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삶의 무게에 짖눌릴 수록 수많은 물음표가 나를 괴롭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질문은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
나에게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의 지인들은 내가 선량하고 다정한 마음을 지닌 따뜻한 사람인 줄 알지만, 전부가 아니다. 나의 안전이 위협될 때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매정하다.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득과 실을 계산한다.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너무나 비겁하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많다.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지은 죄도 무수히 많다. 그래도 나는 좋은 사람인 척 살아가고 있다. 가까운 내 사람들에게만은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다.




어쩔 수가 없구나. 그 여자는 다름 아니, 의사의 부인이었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공허하고 피로한 순간들이 올 때가 있다. 또 나는 상대와 대화를 하고 싶은데 자꾸만 겉도는 기분이 들어 서글픈 경우도 있다. 어쩔 수가 없다.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을 읽기 전에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인간실격'이란 책 제목만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서 '지금이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린 시절에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박예진 님의 편역 덕분에 다자이의 문장이 깊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앞서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을 읽으며 중에서 인상 깊은 문장 몇 가지 정리하며 내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아래는 아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위로 받았던 순간의 기록이다.


”엄마, 사는 건 왜 이렇게 힘들어? 왜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 이는 우리 집 1호의 주요 관심사, ‘삶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이다.


아이가 볼멘 소리로 하소연할 때면 엄마도 네 나이 때 그랬고, 원래 세상은 힘든 일 투성이며,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면 더 성숙한 너를 만날 수 있다며, 인간은 완벽하지도 않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고 입바른 소리를 해준다. 아이는 고맙게도 엄마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엄마도 아빠랑 똑같이 말하네”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여유있는 척 입바른 소리 해대는 엄마지만… 엄마인 나도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다. 쉬운 일은 없다지만 쉽게 살고 싶은 고약한 욕심을 품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게 밀려온다.

오늘 필사한 다자이의 문장은 이런 내 감정을 온전히 수용해준다. 모르는 내용도 아니다. 자기암시처럼 내가 늘 나에게 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자이의 문장으로 읽으니 신기하게도 위로가 된다. 내 아이도 그랬을까? 내 말이 위로가 됐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다자이는 이런 걸 바랐을까? 그랬다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문장으로 나는 비참함도 아름답게 볼 수 있고, 고독을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위로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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