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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Mar 19. 2019

영원히 모르게 남겨두기

<러너스월드> 2018년 12월호 EDITOR'S LETTER




나는 별로 쿨한 사람이 아니다. 잘 삐지고 잘 운다. 짜증도 잘 낸다. 예민하다. 할 말이 있으면 다른 사람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내 이야기만 한다. 그러고 나서 후회한다. 가끔, 아니 자주 한숨을 쉰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자책한다. 다행히 나는 쿨한 척을 하지 않는다. 나는 결점을 숨기는 편은 아니다.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나아지고 싶어 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나는 나아지지 않는다. 나는 십 년 전에도 이랬고,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외롭다. 


나는 자주 소외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나만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 없이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놀 것 같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모르는 어떤 것들이 흐르고 있다. 나는 비밀의 세계에 산다. 아무도 나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혼자 걷는다. 사람들이 없는 곳을 걷다 보면 뭐랄까, 내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명분이나 당위성이 생기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나를 소외시키는 게 아니야, 그저 내가 혼자 걷고 있을 뿐이지,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된달까. 나는 거짓말로 나를 위로하고, 안도한다. 거짓말이지만 괜찮다. 바보 같은 이야기라는 거 안다. 나는 정말 바보니까. 


아무튼 그렇게 산책을 취미로 삼게 되었다.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산이 있는 마을로 이사했다. 주말마다 둘레길을 걷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덜 외로워지는 것 같아서 좋다. 애인이 있을 때는 종종 같이 걷는다. 죽을 만큼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주 많이 행복하다. 하지만 대가가 따른다. 애인과 헤어지면 다시 그 길을 혼자 걸어야 한다. 쓸 데 없이 쓸 만한 기억력 덕분에 산책을 하는 도중에도 괴로워해야 한다. 하지만 딱히 그것 말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까, 나는 그냥 걷는다. 


나는 이런 이유로 달린다. 걷는 시간만큼 달린다. 올해 여름과 가을에는 이틀에 한 번씩 달렸다. 일주일에 50km 이상씩 달렸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을 한 거였지만, 굳이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비교적 최근에, 달리기가 많이 좋아졌다. 밤에 집에 들어오면 바로 옷을 갈아 입고 달리러 나갔다. 피곤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는데 뛰기 싫은 날도 하루도 없었다. 달리기 실력이 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사실 그건 별로 관심도 없었다. 달리면서 나는 나를 용서하게 되었다. 왜, 어떻게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찌질한 나, 이기적인 나, 바보 같은 나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달리면서 주변의 풍경과 풍경 속을 흐르는 공기와 고요한 어둠과 희미한 빛이 어우러지는 어떤 광경을 본다. 그것은 실체라기보다는 감각에 가까운데, 그 감각은 내 피부를 투과하기도 하고, 서늘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기도 하고, 텅 빈 뱃속이나 주머니를 채워 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더 빨리 달리는 게 목적일 수 있지만, 나는 그저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달리는 순간에는 내가 혼자여도 괜찮으니까. 


나는 나랑 달린다. 달리면서 나는 불안하고 미숙한 내 자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과 화해한다. 달리다 보면 내 안에 꽤 멋진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숨소리를 듣는 또 다른 나를 알고 있다. 분명히 나다. 또 다른 내가 있다. 나는 그걸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두 명의 내가 완전히 겹쳐질 때까지 달리고 싶다. 

여름과 가을, 길고 먼 거리를 달리면서 나는 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달려?” 나는 이 질문에 절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대답하지 않을 거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천수만 가지 답을 더 찾아낼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 물음표를 그대로 남겨 두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십 년 전의 나처럼 다시 십 년 후의 나도 정말 바보 같은 이우성일 것이다. 헤어진 여자 친구도 말했다. “오빤 절대 안 바뀔 거야.” 내가 달라지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그녀는 또박또박, 여러 번, 저렇게 말했다. 듣기 싫은 말이지만 정확한 말이다. 그러니 나는 또 오랫동안 나와 불화할 것이다. 어떤 비밀에서 소외된 채 지낼 것이다. 나는 그래서 달린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달리는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너무 많은 이유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체력이 약해서 절대 달리기는 못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 말은 아마 틀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뛰어야 한다. 뛰어야만 한다. 그래서 문득, 그렇게 눈물이 난다. 눈물을 닦고 다시 달린다. 나는 쿨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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