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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Aug 20. 2020

11. 진주 2/2

유등이 빛나는 밤

2013


  진주가 자랑하는 유등축제를 실제로 본 것은 고등학교 동창이 진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서였다. 대학생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면서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오는 것에 한창 심취해 있던 때라 유등축제 기간에 맞춰 친구를 만나러 진주까지 직접 갔다. 점심으로 진주의 냉면이냐 육회비빔밥이냐 고민하다 중앙시장 안에 있는 유명한 진주식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사실 단팥 소스를 뿌려주는 수복빵집이 진주 여행의 필수코스였는데, 오후 늦게 간 터라 문 열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수복빵집의 찐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 곳은 타이밍 맞추기 진짜 어렵다. 그전까지 매 번 실패했던 통영의 오미사꿀빵 본점처럼. 


진주 제일식당, 덕인당 꿀빵 (2013)


  찐빵을 먹지 못한 아쉬움에 같은 시장 안에 있는 꿀빵집에서 꿀빵을 샀는데, 해 지는 남강을 바라보며 등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기대의 순간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처럼 꿀빵이 내 입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인생 꿀빵이라며 연신 감탄을 거듭했다. 물엿 때문에 찐득한 통영의 꿀빵보다 겉이 견과류로 싸여 바삭바삭한 진주의 덕인당 꿀빵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집에 사가려고 남강변에 자리 잡은 여러 먹거리 부스 사이에 지나쳤던 덕인당 꿀빵 부스를 다시 찾았지만 이미 소진되어 부스는 문을 닫았다.


  유등축제 보러 왔다 결국은 꿀빵 이야기로 귀결되는 첫 축제 방문기는, 강 위에 띄워진 형형색색의 유등과 진주성을 따라 촉석루를 비추는 조명이 굉장히 황홀하고 아름다웠던, 언젠가 다시 꼭 와보고 싶은 기억이었다. 왜 오랜 시간 동안 진주의 대표적인 축제로 남아있는지 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남강변 장어거리 (2013)
진주 남강 유등축제 (2013)
진주 남강 유등축제 (2013)


2017


  그 후로 4년 뒤 유등축제 기간이 추석 연휴와 겹치자 이때가 기회다 싶어 부산에 내려간 김에 동네 친구와 한껏 치장하고 렌터카까지 빌려 진주로 갔다. 예전에는 한 푼이 아쉬운 대학생이라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것도 망설여졌는데, 돈 버는 직장인이 되자 SNS에 심취해 진주에서 사진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는 카페에 먼저 가서 시켜놓은 커피와 빵은 그저 사진을 위한 피사체에 불과하다는 듯이 사진만 찍어댔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 (2017) _ 함께 비를 맞은 사람들

  해가 지고 나서 차를 공설운동장 임시주차장에 세워두고 셔틀을 타고 축제 현장에 내렸다. 촉석문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라 서로 사진을 계속 찍어주었다. 그런데 입장권을 사려고 줄을 서는데 비가 조금씩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앞은 성문이요 뒤는 강이라 피할 곳이 없던 우리는 그대로 쫄딱 젖었다. 그렇게 무방비로 흠뻑 젖어본 적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 촉석문 문턱도 넘지 못하고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줄 서 있던 사람들 모두 흩어지고 우리도 젖은 마당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비를 맞으며 진주성 뒤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비옷과 수건을 샀다. 마트 직원이 비옷과 우산 재고를 모조리 입구로 꺼내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집어갔던 순간이 생생하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 (2017)

  하필이면 차까지 멀리 있는 바람에 운동장 공터까지 추적추적 걸어갔다. 서로 화장을 해주고 서로 입지도 않던 원피스를 입는 등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니 하늘이 비웃는 것 같았다. 카페에서 먹은 빵 말고는 제대로 먹은 게 없었던 탓에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쫄딱 젖은 머리칼과 화장이 번진 얼굴로 라면을 먹었다.


  나의 여행 기억에 기분이 나쁠 정도로 망한 일이라고 하면 순천 게스트하우스에서 광주 궁전제과에서 사 온 나비 파이를 전부 도둑맞은 일 정도였는데, 멀리까지 가서 축제장 입구도 못 들어가 보고 돌아온 적은 처음이었다. 너무 들떠서 날씨 확인을 하지 않은 나를 탓해야 하는 건지 기분이 나쁘기 이전에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었는데, 이것도 이 도시에 관해서는 신선한 추억이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다음의 유등축제를 기약해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어릴적부터 다녀갔던 진주의 모습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순간 남강에 떠있던 오리배가 사라졌고, 3년 전엔 비맞는다고 정신이 없었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장어집들이 사라져 촉석루는 눈 앞에 있지만 그때 그 길이 아니었다. 좋았던 추억을 더듬어보기위해 시간이 지나 진주를 찾지만 그 때 내가 본 진주의 모습이 점점 아니게 되어가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도시는 변화할테니 앞으로의 유등축제를 통해 변해가는 모습이라도 꾸준히 기억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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