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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Jan 01. 2021

Epilogue

  스쳐갔던 도시들에 대한 기억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렇게 오지 않기를 바랐던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었고 계절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각 도시들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주제의식이 제대로 표출되었는지 조차 의문이지만, 10년이 넘는 세월은 내 기억도 잠식해버려 제대로 된 기억인지 왜곡된 건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래서 본가에 잠들어있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써오던 다이어리들을 모조리 꺼내 기억을 맞춰보기까지 했다. 도시의 기억은 잊고 살았던 추억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각 기억 속에 나의 서른까지 함께 해 준 사람들을 만나 추억을 재확인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속초 (2020)

  올해 봄이 오기 전 속초의 겨울을 놓치고 싶지 않아 무작정 차를 끌고 동해로 갔는데, 아직 눈이 덮인 설악산의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이런 걸 봐야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 좋아하는 것이 생길 때에는 늘 처음이 있기 마련이지만, 늘 온전한 새로움보다는 익숙한 것의 새로움을 탐하는 게 더 위안을 줄 때도 있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이 도시들은 오래 머물러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완전히 잊지 않고 언젠가 또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글로써 담아두려고 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 모습도 달라지듯이 도시의 모습도 매일 변한다. 특히나 가장 안타까운 건 어릴 적 뛰놀던 동네의 정경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도 사실은 그런 위기감에서 탄생했다. 왜 그렇게 높은 아파트를 짓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집에 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해야 하는 게 좀 슬펐다. 내가 알던 우리 동네가 아니니까. 아마 모두가 살고 있는 주변의 변화를 겪는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윗세대에 비하면 이 정도의 변화쯤은 얼굴에 점하나 더 생긴 격일 것이다. 


해운대 해수욕장 (2019) 모교 스탠드, 부산 ㅈ여중 (2020),

  앞으로의 나는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좀 더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다는 사명감 하나쯤은 가지고 나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기 나와있는 스무 개의 도시만큼 새롭게 좋아하게 된 도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2020년 4월 13일

하남 




+브런치 연재를 마치며


  2019년부터 모든 도시에 대한 기억을 다 써두고 브런치 작가 신청부터 했다. 매주 꾸준히 글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한 달에 몇 안 되는 휴일의 대부분을 그 날의 도시에 대한 글을 수정하고, 외장하드에다 깊숙이 숨겨놓은 사진을 찾는데 썼다. 결국 2020년의 마지막 날까지 완결을 내지 못했다. 30을 맞이하기 전부터 써 온 글을 31세가 되어 끝을 내려니 해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던 30세의 나날들이 순탄하게 흘러간 것은 아니라 내용을 바꾸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을 쓰던 그때의 내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결정하고 이렇게 늘 하던 수정의 과정 없이 추가로 덧붙이게 되었다.


  나의 서른은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활동의 제약이 많았던 시간들로 크게 기억될 것이다. 오히려 대면의 기회를 박탈당해서 그런지 자연스레 글 연재에 집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탈고가 의외로 빨리 끝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거의 1년을 휴무일에 글만 쓰다 보니 서른 하나의 휴일은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쉬지 못하는 성격에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또 무언가에 빠져서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해가 또 바뀌었으니 올해만큼은 같이 기억 속에 있었음에도 못 만나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 볼까 생각도 해본다.


굿바이 하남 (2020)

  덧붙여서, 결국 나는 서른의 가을에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만기로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주택임대차 보호법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신도시가 개발되어 지하철이 개통되고 온갖 인프라가 들어서는 바람에 폭등한 집값의 승리였다. 당장 그 시점에서 내가 가진 돈에 청년 전세 대출로 받을 수 있는 최대 대출금을 더해서는 방 한 칸에서 더 늘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일반 전세자금 대출로 바꿔 청년 전세자금 대출로 받았던 대출금에서 두 배 가까이 늘리고, 이자도 1.2%에서 2.48%로 올려 잠실의 복층 오피스텔에 살게 되었다. 경기도 외곽으로 나가기엔 출퇴근 리스크가 너무 커서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다. (최근엔 관리비로 현타를 맞았다.) 과연 언제쯤 햇볕이 창으로 한가득 들어오는 넉넉한 공간에 빨래를 말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30대도 여전히 주거안정을 위한 투쟁 서사로 진행될 모양이다.



2021년 1월 1일

잠실


잠실 석촌호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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