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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18. 2018

소멸하는 순간까지 이주하는 사람들

김아영의 가상 광물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주’했다. 생명이 된다는 건, 미지의 세계에서 지구로 이주하는 것이다. 신생아 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외할머니 집으로, 마침내 생애 첫 집으로 이주한다. 인간의 삶은 이주의 역사다. 돈이 없어도 이주하고 돈이 많아도 이주한다. 거대한 아파트나 주상 복합 건물을 지어 수많은 사람을 이주시킨다. 그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원래 거기 머물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킨다. 몸의 이주만이 이주는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마음이 이주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생을 떠나 다시 미지의 세계로, 혹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으로 이주한다. 이주가 없다면 기억이 없고, 이주가 없다면 존재도 없다. 이주는, 때론 설레고 때론 불편하다. 돈이 많다면 편하게 이주할 수 있다. 좋은 곳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주할 곳 자체가 사라지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혹은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선 어디로 이주해야 하는 걸까? 혹은 그렇게 이주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 걸까? 김아영 개인전 <다공성 계곡>은 이주의 문제를 다룬다. 사실 이 전시는 광범위한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데 그중 하나가 ‘이주’다. 전시장 가운데 큰 스크린이 있고 영화가 상영된다. 주인공은 페트라 제네트릭이라는 인물이다. 아니, 광물이다. 광물? 광물이 말을 한다. 페트라는 어떤 시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서 이주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인간 여자 같이 보이는 존재가 등장해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 여자는 밝은 색 옷을 입고 있고 진하게 화장을 했다. 그녀는 안정적인 이주, 눈부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기꾼 같다. 가상의 인간, 아니 가상의 광물 페트라 제네트릭은 마침내 이주한다. 그가 선택했으나 그가 원한 것은 아니다. 이제 안정적으로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시스템이 오작동하듯, 누군가 침범한다. 그 존재를 확인하고 부정하면서 페트라의 이주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존재가 누구인지 확인하러 가는 것은 꽤 의미 있어 보인다. 왜 인간이 아니라 광물인지(물론 페트라의 본질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확인하는 것 역시 의미 있어 보인다. 결국 우리 개인에게 처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페트릭이 이주한 세계는 디지털 데이터가 존재하는 저장 공간 같이 보인다. 일상 속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가보지 못한 세계다. 그곳에선 모든 것이 영원히 존재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물론 가능성만을 갖고 있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일민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 집에서 이주해볼까? 


2018. 04. 18. 한겨레 esc 이우성의 낙서 같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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