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이 주는 진한 향기에 더하여
며칠 전, 겨우내 갖가지 과일과 채소들이 들락날락했던 냉장고 신선실 한 칸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청소도 해야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막내아들이 주문한 맥반석 계란 두 판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제법 많은 것들을 비워내야 했다.
그러다 안쪽 깊숙한 구석에서 발견한 것이 있었다. 지난 연말 친정엄마가 주신 대추와 생강으로 정성껏 만들어 둔 대추생강청 두 병이었다. 담가 놓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지만, 라벨지에 적힌 날짜와 이름을 보고서야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은 손 큰 엄마 덕분에 한나절이 꼬박 지나서야 대추와 생강 다듬기가 끝났었다. 곱게 갈아낸 재료들을 커다란 볼에 모아 담고, 미리 소독해 둔 1리터짜리 꿀병에 켜켜이 쌓은 뒤 흰 설탕을 조금씩 부어 재웠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지인들에게 나눠 줄 500ml 병 두 개를 더 채웠다. 그러고도 남은 자투리 재료들은 마침 흰 설탕이 모자라 찬장에 있던 흑설탕을 부어 작은 병에 담아두었었다.
오늘 드디어 큰 병에 든 대추생강차를 마셔보았다. 저온 숙성 덕분인지 대추와 생강 맛이 은은하게 배어 나와 향긋했다. 문득, 흑설탕으로 재운 작은 병의 차맛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새 찻잔을 꺼내 진한 색의 흑설탕청을 한 스푼 듬뿍 떠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 입 마시는 순간, 아까와는 전혀 다른 깊고 진한 맛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깊고도 묵직한 맛은 어디서 오는 걸까?'
처음에는 그저 설탕의 색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흰 설탕은 깨끗하고 깔끔한 단맛을 내지만, 흑설탕은 묵직하고 진득한 깊은 단맛을 내니까.
하지만 몇 번을 더 마셔보니 단순히 설탕의 차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남겨진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맛이었을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구석에 밀려났던 마음들, 그리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것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깊이를 만들어낼 때가 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눅진하게 혀끝을 감싸는 이 흑설탕의 맛처럼, 우리 삶의 구석진 곳에 남겨졌던 경험들이 숙성의 시간을 거쳐 가장 진한 인생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람의 시간도 비슷한 것 같다.
잘 정리된 날들, 계획대로 흘러간 순간들보다
어딘가 남겨지고, 조금은 모자라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시간들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아
깊은 맛을 만든다.
원재료인 대추나 생강처럼, 젊은 날에는 감정이 꼿꼿하게 살아 있어 다루기가 참 어려웠다. 밀어내려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가만히 두자니 마음속에서 끝없이 출렁대며 흔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달라졌다. 한때 버거웠던 그 감정들은 설탕에 잰 재료들처럼 세월 속에 천천히 녹아들어 조화로움을 갖게 되었다.
오늘 냉장고 구석에서 찾아낸 것은 한 병의 청이 아니라, 투박하지만 깊이 있게 익어가는 삶의 한 조각이었다.
남은 날들에 바라는 것은 자유로운 열정과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솔직함, 그리고 어떤 실수에도 비겁하게 변명하지 않는 담담한 태도이다. 몸은 서서히 느려지더라도 마음만큼은 더 유연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흑설탕맛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나는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은 맛을 내며 살기로 작정했다.
조금은 덜 소중하고, 조금은 덜 정돈된 것들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다면 지금의 내 시간도 어쩌면 아직 잘 익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