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끝에 매달린 봄의 향기

역시 고향의 맛은 냉이된장국이지

by 민비

​1. 익숙한 엄마 냄새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는 않았다. 어쩌면 거리보다 내 마음이 더 멀리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문 앞에 서 있던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툭 던지듯 말씀하신다.


“왔냐.”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엄마의 허리는 아직 꼿꼿하지만 허벅지의 근육이 빠져서일까. 약간은 밖으로 휜 다리가 불안해 보인다.


""엄마,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얼른 들어가자."


나는 엄마의 허리를 붙들고 밀듯이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 앞에만 서면 여전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철없는 딸노릇을 하고 싶은 나는 때로는 엄마의 지나친 사랑이 못마땅하다.


​부엌에 들어서니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엄마는 내가 시골집에 내려가겠다고 전화한 그날부터 나에게 무얼 먹일까 고민하며 오늘 아침 일찌감치 이런저런 반찬을 만드느라 부산을 떨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반찬 투정도 심하고 입맛 까다로운 딸내미가 그나마 별 말없이 먹었던 고추장을 바른 파래김은 어김없이 식탁 중앙에 놓여 있다. 아궁이는 진즉 사라졌지만, 엄마의 밥상에는 여전히 아랫목 같은 온기가 가득하다.


박서방과는 잘 지내지?”


엄마의 질문은 늘 이렇게 단순하다. 남편과 잘 지낸다고 하기엔 며칠 전의 말다툼에 아직 앙금이 남아 있고 그렇다고 걱정하실게 뻔한데 시시콜콜 말하기엔 엄마의 반응이 부담스럽다. 아이들은 이제 각자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때가 되었고 일상에 지친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며칠간 시골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통보하듯 남편에게 던져놓고 내려온 지금 실타래가 엉킨 듯 마음이 어지럽다.


“그냥… 그렇지, 뭐.”


엄마는 그 짧은 대답 하나에 내 모든 고단함을 다 알아차린 사람처럼 대화를 다른 것으로 돌린다. 딸만큼은 자신의 힘든 인생을 닮지 않기를 바랐는데 어느새 딸의 눈빛이 자신을 닮아가고 있다는 게 마냥 좋지는 않으신 듯하다.


"일은 잘 되고?"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문 닫는 곳이 많아. 며칠 전에 빵을 사러 갔는데 단골 집이 문을 닫았더라고."


가장 밑바닥 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해결이 되어야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룰 수 있다는 매슬로의 '욕구의 이론'을 모르더라도 사람들은 경기가 불안해지면 먹는 걸 제일 먼저 줄인다. 그러니 자아실현은 엄두도 못 내고 저 멀리 강 건너로 떠나보낼 수밖에.


​2. 밤,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날 밤, 엄마 방에서 나는 오랜만에 엄마와 전기장판 위에 나란히 누웠다. 천장은 낮고 벽지는 세월을 입어 누렇게 바랬지만, 창밖에는 차가운 가로등 대신 따스한 별빛이 가득했다. 엄마는 눕자마자 금방 코를 골며 깊은 잠이 드셨나 싶더니 가끔은 팔이 아픈지 끙끙거리며 팔을 주무르기도 하셨다


​서울에서의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했다. 일의 성과, 인간관계, 통장의 잔고, 그리고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숨 가쁘고도 지루한 성취들. 하지만 이 낡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엄마의 딸이면 충분하니까.


엄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 소리를 내가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엄마의 등을 만져보았다. 어느새 작아진 엄마의 등이 손바닥 하나에 다 들어올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3. 냉이향에 묻어온 봄

​이른 아침, 서늘한 공기와 함께 엄마가 나를 깨우셨다.


밥 먹고 냉이 캐러 갈래?”


나는 새벽까지 뒤척이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진 후 서둘러 이불을 갰다.


"아직 날씨가 추운데 냉이가 벌써 나왔어?"

"벌써가 뭐야. 좀 있으면 뿌리가 쇄서 못 먹어~."


겨울을 날 수 있는 냉이는 추운 지금이 약성도 좋고 가장 맛있을 때라며 엄마는 아침을 드시자마자 기어이 검은 비닐봉지 하나와 과도 하나를 가지고 냉이가 많은 논둑을 향해 먼저 나섰다. 제법 따뜻해 보이는 알록달록한 무늬의 김장조끼를 입고 엄마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선 골목길의 아침 공기는 아직 쌀쌀했지만 발밑에서 올라오는 논둑길의 흙냄새는 오히려 훈훈했다. 그곳에는 안간힘을 쓰며 겨우내 추위를 잘 견뎌낸 보랏빛 풀들 사이로 이름 모를 연둣빛의 작은 풀들이 삐죽거리며 돋아나고 있었다.


​엄마는 허리를 숙여 능숙하게 흙 속의 냉이를 찾아내셨다. 나는 냉이를 구분하지 못해 헤매다가 커다란 냉이를 찾아내서 흙을 털어내며 부지런히 봉지에 담았다.


“그건 못 먹어. 잎이 이렇게 작고 사방으로 쫙 퍼져야 진짜 냉이지.”

"무슨 풀이 그렇게 다 똑같이 생겼어."


나는 애써 캔 풀을 땅에 쏟으며 투덜거렸다.

엄마는 평생을 흙과 부대끼며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숙한 감각으로, 그 짧은 시간에 캐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듬기까지 하며 잠깐 사이에 검은 봉지 하나를 가득 채웠다. 하늘에서는 하얀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하던 봄햇살이 엄마와 나의 머리를 비추며 찰랑찰랑 웃고 있었다.


"아고, 허리야."


논둑을 오르내리느라 허리가 뻐근해진 내 입에서는 절로 탄식이 나왔다. 재밌게만 보였던 냉이 캐기가 이리 힘들다니, 세상에는 만만한 게 없다. 이제 시장에 가면 나물들이 비싸다는 생각은 버려야겠구나. 나와 걸음쯤 떨어진 논둑에 앉아 냉이를 다듬는 엄마의 그 모습이 나중에라도 너무 그리운 모습이 될 것 같아서 나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 온다.


​4. 누군가의 딸인 엄마와


​“나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어.”


논두렁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불쑥 말씀하셨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도 일머리가 있고 체력도 좋아서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제일 아끼셨다고 한다. 6.25 전쟁도 있었고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시골에서는 여자인 엄마가 학교에 다니며 공부만 하는 건 사치이던 때였다. 그래도 엄마는 한글도 다 떼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 내가 연애와 진로, 자아실현을 고민하던 그 나이에 엄마의 삶에는 ‘나’라는 시간 자체가 없었다. 엄마의 세대에게 삶이란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견뎌내는 것이었으리라.


"우리 집에서 엄마가 젤 현명해. 그 많은 식구들 다 시집 장가보내고도 좋은 소리 못 들었잖아. 그래도 크게 신경 안 쓰는 거 보면 엄마는 참 대인배야."


나라면 아마 못했을 거야. 나는 진심으로 엄마를 따라 살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지겹도록 부딪혀 본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엄마를 조금만 더 닮았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나아졌을까. 문득 냉이를 캐느라 시커멓게 돼버린 손톱 사이로 후회와 절망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좀 더 유연하게 살아보자.


​5. 엄마와 나의 시간의 속도


​“아빠는 처음에 어땠어?”


내 질문에 엄마는 수줍게 웃으셨다. 주변의 소개로 처음 만난 아버지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시골 사람답지 않게 말끔한 편이었고 집도 먹고살만해서 마음에 들었단다. 그러나 아버지는 많은 형제들 중 장남이었고 그 시절 모든 맏며느리가 그렇듯 엄마도 호된 시집살이에다가 아버지 형제들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한평생이 후딱 가버렸다. 가끔은 무거운 책임을 엄마에게 떠넘긴 아버지가 야속해서 싸우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래도 네 아버지가 이만큼 살게 해 놓고 갔으니 여한은 없지 싶다' 하신다.


내 걱정하지 말고 너는 서울에서 잘 살아라.”


엄마는 여전히 내가 걱정이고,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기둥이 필요한가 보다. 둘 사이에 점점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들이 얼마큼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생각만으로도 울컥해진다.


"앞으로 더 자주 올게."


​6. 다시 서울로

​집으로 돌아오는 시골길은 고요했지만 잠잠하던 바람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더니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놓았다. 우리 모녀는 서둘러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얄미운 바람이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자꾸 들추어 대며 까불거리다 순식간에 개천을 따라 달음질쳤다.

문득, 내가 그토록 성공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참고 견디며 일궈온 그 수고가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번개에 콩 볶듯 후딱 끓여준 냉이 된장국에 밥 한 숟갈을 말아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시중에 파는 된장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이 맛은 어떤 레시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엄마의 맛’이었다. 엄마의 젊음, 고단함, 그리고 말 없는 사랑이 모두 그 국물 안에 녹아 있었다.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타며 나는 생각했다. 진짜 성공이란 무엇일까.

바리바리 싸 준 보따리 안에 가득 담긴 엄마의 애정과 아마도 그 냉이향을 잊지 않는 것, 엄마의 숨소리를 가슴에 새기는 것, 그리고 언제든 돌아와 엄마의 작아진 등을 안아줄 수 있는 딸로 사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이 나아가야 할 가장 올바른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문고리가 없어 절대 열리지 않는 차창 밖을 향해 있는 힘껏 무거운 불안함을 던져버렸다. 처음에는 유리창에 부딪혀서 내게 도로 달려오던 그것은 던질수록 점점 가벼워졌고 결국 내 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나는 핸드폰에서 남편 전화번호를 찾아 힘주어 눌렀다. 신호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들린 남편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지금 올라가고 있어."


속삭이듯 소곤거린 후에 얼른 전화를 끊고는 뜬금없이 솜처럼 가벼워진 마음이 어색해진 나는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창밖에서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엄마처럼 따스하게 내 어깨를 토닥일 때 나는 가만히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엄마와 냉이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감정을 느낄 사이도 없이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 어느새 봄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