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를 전공하게 되기까지
수능을 보고, 동아리 선생님께 어디를 가면 좋을까 여쭤 봤더니 들었던 답이었다.
2002년, 고 3으로 본 수능은 성공하지도 망하지도 않았다.
원점수로만 치면 평소랑 비슷한 수준이었고, 변환표준 점수는 좀 더 높았던 걸 보면.
원서를 쓰기 전 배치표를 모아 모아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교과 과를 찾아본 결과,
내 마음에 드는 학교의 영문과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중학생부터인가.. 영어를 전공하고 싶었다.
영문학자가 되서 좋아하는 영어 실컷 하고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나는 잘하는 게 몇 가지 없다. 손재주도 없고, 운동 신경도 없고, 키 작은 쪼꼬미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부머리가 좀 있고, 그 머리는 언어 감각에서 나오는다는 것?
어른들 말에 의하면 4살 때 한글을 뗐다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그건 과장인 것 같고
암튼 수학 머리가 지지리도 없는 것에 비하면 언어 머리는 몰빵이다 싶을 정도긴 했다.
그 시절까지만 해도 영어는 중학생 때나 되야 학교에서 배웠고
본인이 공부를 못한 욕심이 있었던 아빠는 어릴 적부터 나에게 영어 환경을 세팅해 줬다.
자고 있으면 아침 모닝콜 대신 영어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고,
달려라 하니로 만든 영어 비디오테이프가 집에 있었고,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봤더랬다.
중1 때였나.. 초6 때였나..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던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다지 재미는 없었지만, 숙제나 과제를 하면 주는 쿠폰 같은 것을 모으느라 열심히 했던 것도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태어날 때부터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때가 아니라 운 좋게도 나는 좀 더 일찍 영어 환경에 노출된 격이 되었고
학교에서 시작한 영어는 생각보다 할만했다. 할만하니 재미있었고, 재미있으니 열심히 하게 되었고, 성적은 좋았다.
나는 영어를 잘해.라는 착각 속에 살 수 있었던 행운이랄까?
그렇게 중학교 때, 나는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레 영어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아빠는 의사를 하라고 했었는데, 피를 보는 의사가 너무 싫어 좋아하던 영어 선생님께 진지한 고민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답을 받기도 했다.
(그 편지가 있으면 너무 웃기면서 재미있고 기억이 새록새록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 이사할 때 사라진 듯..)
그리고 고등학교를 가며 영어 동아리를 만들어 동아리 대표도 할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당연히 전공은 영문학이나 영어학을 할 줄 알았는데.. 가고 싶은 학교도 있었는데..
수능을 보고 나서 받아 든 점수로는 갈 수가 없었다..
실망한 마음을 가득 안고 동아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께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스페인어 전공 해 보는 건 어때?”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날 스페인어를 처음 들어 봤다. 스페인어? 도대체 어디 있는 나라에서 쓰는 언어야?
선생님은 미국 남부에서는 스페인어가 많이 쓰인다며,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영어를 같이 해 두면
미국 갔을 때 도움이 많이 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오 그래?! 영어를 놓지는 않을 거니, 미국은 갈 거니, 그럼 일단 스페인어를 해 봐?
그렇게 스페인어를 가기로 하고, 1순위에 우리 학교 스페인어과, 2순위에 지역 국립대 중국어과(스페인어과는 없고, 영어과는 점수가 더 높고 ㅠ), 3순위에 우리 학교 지방캠 영어과(지방캠이라 영어과 지원 가능)를 했고, 추가합격을 거쳐 우리 학교 스페인어과에 가게 되었다.
올레!
하지만 이때까지도 몰랐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