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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Feb 12. 2019

재난 속에서 발견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리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은 후 서평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사진

제목에 쓰인 단어인 ‘응시’란 말 그대로 어느 한 곳을 집중하여 똑바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누구도 대재난이 쓸고 폐허만 남은 곳을 그런 식으로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사방에 널려 있는 재난의 잔해,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폐허를 똑바로 보지 않고 미디어나 주변인들을 통해 왜곡된 시야로만 바라보았다. 그런 괴로운 광경을 똑바로 봐서 자신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레베카 솔닛은 그런 괴로운 광경 즉, ‘폐허’를 똑바로 보았다, 즉 ‘응시’했다. 그 결과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또는 우리에게 세뇌되어오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보았다. 그가 본 것은 재난 이후 모든 걸 잃어 이성을 잃고 남은 자원을 쟁취하기 위해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돌아가 잔인하게 경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든 게 사라진 절박한 상황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협력하며 오히려 재난 이전보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시민들이었다. 게다가 정작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게 하는 원인은 재난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작가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시작으로 근현대에 벌어진 5개의 대재난에서 자신이 목격한 진실을 우리에게 공유하고 왜곡된 시야를 만들어낸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유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이 책이 재난이나 자연재해 그 자체에 대해 다루는 게 아니라는 점, 두 번째는 이 책의 내용을 정치적으로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괜히 복잡한 이념이나 개념을 집어넣어 해석하지 말고 좀 더 단순하게 봐야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회주의가 맞고 자본주의는 틀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연재해, 전쟁과 같은 재난을 찬양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더 실용주의적으로 책을 봐야 한다. 재난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좋고 최대한 피해가 적고 사상자가 적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단 어쩔 수 없이 재난이 일어났다면,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야 하는가? 이 책에서 작가는 미시적으로도 거시적으로도 놀라울 만큼 풍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우선 미스바 카페, 슈미트의 급식소, 마틴 루터 킹의 커먼 그라운드 등 어려운 상황에서 경쟁하기는 커녕 자발적으로 타인을 돕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강한 이타주의, 믿음, 사랑, 연대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시민사회를 통제하고 소문을 날조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엘리트 패닉에 빠진 기득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해 온 윌리엄 제임스, 새뮤얼 프린스, 크로폿킨 등 재난 사회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들은 이렇게 3박자로 융합된 모든 이야기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념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인간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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