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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oonsam May 04. 2024

Siri야, 제대로 쉬는 방법 알려줘

릴스보다는 릴렉스하고싶은 우리에게

선물 받은 스탠드 조명이 도착했다. 조명에 달려 있는 전구는 구글, 혹은 iOS의 인공지능인 시리(Siri)를 이용해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는 스마트 전구다. 이런 정보들을 찾아보며 여차저차 설정을 완료하고 드디어 "Siri야 조명 켜줘"라는 명령어로 불을 켜는 데 성공했다. 내 취향에 맞게 조도를 설정해 둔 후 또 다른 원격 설정을 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구글링해보았다.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던 와중에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늑한 분위기에서 푹 쉬라는 의미로 선물 받은 조명인데, 계속해서 그 사용법을 찾아보고 공부하며 가만히 있질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멋쩍다. 조명이 내 방에 잘 어울리는지, 조도는 적당한지 살펴봄직도 한데 바쁘게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훑으며 샅샅이 다른 기능은 없는가 살피는 내 모습이란.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그랬다. 학교에 다니던 때부터 군 시절 휴가를 나왔을 때, 그리고 이직을 준비하며 휴식 기간을 가질 때면 꼭 무언가를 해야만 안심이 됐다.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대체로 바쁘고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듯 계속 스스로를 재촉하며 움직였다. 


평소 방에 혼자 있는 동안 무엇을 하는지 곰곰이 되짚어 봤다. 테이프를 잘라 방바닥을 이리 저리 뜯어 가면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먼지 쌓인 책상도 한번 스윽 닦으며 "이 다음은 무얼 하지?"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해야 할 것들을 찾곤 하던 나. 그리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괜히 한 권씩 꺼내서 촤라락 훑는가 하면, 구태여 잘 정돈되어 있는 책들을 모조리 꺼내 놓고 각각 다른 위치에 새로이 꽂아 넣기도 했던 나.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이 성격이 참 가관이라 자조한다. 정말 진지하게 주의력이 결핍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꼼짝 않고 게임에 몇 시간 동안이나 집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멋쩍스레 해소된 고민이었지만. 모쪼록 현재까지 내게 있어 오롯이 쉬는 것에만 집중하는 '편한 휴식'은 참 어려운 일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 또 다른 부업을 해내는 이들, 혹은 퇴근 후 바로 외국어 학원에 가거나 각종 자격증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이들까지. 이른바 '갓생'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보며 나는 또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물들곤 한다. 




요 근래 소셜 미디어를 살펴보면 '자기계발', '성공스토리', '자수성가' 등을 키워드로 한 콘텐츠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관련 영상이나 만화, 글을 보게 되면 괜스레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혼이 나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좋아요 버튼의 수나 댓글 수가 많은 것을 보면 그만큼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다는 방증이겠지. 나는 그저 안구정화를 위해 귀여운 강아지 영상을 보려고 앱을 실행했을 뿐인데. 


이러한 풍토는 초중고 시기부터 형성되는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 하교길에 바로 학원 봉고차에 몸을 실었던 친구들이 학급의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척 많았다. 나 역시도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던 과목 때문에 단과학원으로 향하곤 했다. 방학이 되어도 마찬가지. 학교 생활의 쉼표라 할 수 있는 방학 기간이 되어도 방학 숙제와 보충수업의 늪에 빠졌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장장 12년에 걸쳐 이어지는 학교 생활은 결국 좋은 성적을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시간으로 쓰인다. 그 목적에는 내 자식이 더 나은 미래를 살길 바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이 깃들테고. 성장 과정이 이러하니 어른이 되고 나서도 쉬면 도태된다는 걱정,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삶에 스며드는 것이다.


피카츄 돈까스를 손에 쥔 채 속셈학원에 가던 어린이 김모 군은 무럭무럭 자라나 영업 실적에 허덕이는 김 주임이 된다. 학습지 숙제를 다 풀지 못해서 선생님에게 혼날까봐 딱풀로 쪽수를 붙이곤 했던 박모 양은 주 4일 야근에 시달리는 박 과장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젖은 휴지처럼 축 늘어져 퇴근한다. 몹시 피곤하지만 집에 가서도 푹 쉬지 못한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 드리운 채로 외주 일거리를 받아 부업을 하고, 온라인 강의로 고급 엑셀 강좌를 보며 공부한다. 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김 주임과 박 과장, 아니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치열했고 이미 치열하다. 나를 다른 사람과 빗대며 내 부족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인스타그램 돋보기 버튼 속의 사람들이 아무리 화려할지언정 주눅들고 위축될 필요가 없다. 그 시간에 적당한 휴식과 여가 시간을 가지며 신체적, 정서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당장 내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데에 현실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


물론 자기계발을 통해 뚜렷한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부자가 되겠다는 큰 꿈이 있는 사람은 예외일 수 있다. 추가 수입을 창출해서 금전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우, 혹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개인적인 스킬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인 경우라면 그에 맞게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일은 당연하다. 막연히 뒤쳐지는 감정으로 전전긍긍하며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의 일상도 다를 바는 없다. 다가올 내일을 걱정하다 잠자리에 눕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릴스와 쇼츠를 끝없이 스크롤하며 영양가 없는 도파민에 절여지다 스르르 잠에 든다. 이러한 나날이 반복되며 일상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햇살 따숩고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좋은 날씨에 하루를 시작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더라도 그 소중함이나 기쁨을 오롯이 느끼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고, 남들처럼 잘 나가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은 그런 일상의 반복.


최근에는 이대로 안되겠다 싶은 판단이 들어 내 나름의 파훼법을 찾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기세로 생각 자체의 스위치를 끄는 방법이다. 계속해서 하얀 종이만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상태로 눈을 감고 가만히 벽에 기대 앉아 있거나 눕는다. 스마트폰은 저 멀리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계속 시도하면서 익숙해지면 머릿속의 전구 On/Off가 가능해진다. 


쉰다는 뜻을 가진 '휴식'이라는 말, 진정한 휴식은 많은 것들을 의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거나 피크닉을 하는 것이 진정한 휴식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책을 읽는 것이나 영화를 보는 것이 휴식일 수도 있다. 무척 다채롭지만 본질은 단 하나를 꿰뚫는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 




과거 유배지에서 20년간 머무르시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의 처지를 타인과 비교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된 상태가 곧 가난이라고. 그런 고로,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며 남들과 비교하고 나를 자책하는 시간은 당연히 휴식과는 거리감이 꽤 있으므로 지양해야 하겠다. 내 인생의 가장 젊은 오늘을 회사에서 치열하게 살아냈음에 감사하고, 이런 나를 스스로 위로하는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7일로 이뤄진 일주일 중 쉬는 날, 주말은 단 이틀이다. 짧다. 주말이 짧은 것은 실제로 짧아서다. 일에 매진하는 주중이 5일이고 주말이 2일이다. 여러 생각들과 고민들, 앞날의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하시다면 일단 생각을 꺼두고 푹 쉬어보심이 어떨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조바심 없이, 온전히 쉴 수 있는 습관이 축복처럼 깃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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