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붕어빵을 잊지 못하는 이유

by Minchoonsam

빗물이 창문을 할퀸다. 덥고 습한 날씨에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하는 열차는 한산하다. 문가에 기대 서서 머리를 창문에 갖다 댄다. 삐직삐직 창문을 할퀴는 빗물을 바라보다 무의식의 상념에 빠진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한 번 돌아보기도 하고, 오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는 잘 지내고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괜스레 아버지가 떠오른다. 다소 무뚝뚝한 인상에 항상 스포츠 머리를 고수하는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무던하고 강직하신 분이다. 출근하실 때 "다녀오세요" 라고 말씀드리면, 흘긋 쳐다보고 "그래" 하시며 차분하게 문을 나서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늘 듬직하고 무덤덤했다. 묵묵한 가장의 이미지 그 자체랄까.


핸드폰을 꺼내든다. ‘아부지, 잘 지내시죠?’ 한 문장 적다가 괜스레 귀 뒤를 긁는다. 자취를 시작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집에 왕래도 잦지 않았으며 연락을 자주 드리지도 않았던 나. 불타는 효자의 멋쩍은 마음을 담아 '아들 잘 지냅니다. 보고싶어요'라고 마저 적는다. 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보낼까 말까 지우고 반복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열차가 세 정거장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전송버튼을 토옥, 누른다.


침을 꼴깍 삼키며 내 메시지가 전송된 화면을 계속 들여다본다. 이윽고 내 메시지 옆의 숫자 ‘1’ 이 사라진다. 아버지는 곧바로 ‘그래 집에 함 와라’ 하고 답신을 보내신다. 끝이다. 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메시지를 보냈던 내가 괜스레 민망해진다. “이번 역은 ㅁㅁ, ㅁㅁ역입니다…” 안내방송이 적절하게 생각을 끊는다. 내려야지, 중얼거리며 출입문을 나선다.




가만 되돌아보면 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어렸을 적 태권도 학원에 등록하면 장난감을 준다기에 장난감이 갖고 싶어서 일절 관심도 없던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며 떼써도, 움직이는 로봇을 사달라며 백화점 바닥에 울며 뒹굴어도, 아버지는 언제나 다른 말씀 없이 “그래” 하셨다.


내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처럼 묵묵하고 또 무뚝뚝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참 한결같은 분이다. 개찰구를 나오며 아까 아버지가 보내셨던 메시지에 ‘감사해요!’ 하고 답신을 보낸다.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가 머리 위에 빨간색 하트를 들고 있는 이모티콘과 함께.


출구로 나오니 아직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산을 펴들고 집으로 향하며, 초등생 시절 홍역을 앓았던 때를 떠올린다. 겨울방학 때였나, 즐거운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지독한 홍역이 나를 찾아왔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열도 나고, 하루 종일 켈록거렸다. 병원이 무서웠던 어린 마음에 “병원은 안 갈 거야!” 하며 버티다가 결국 아버지의 두터운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다. 그 날도 이렇게 비가 왔는데.



진찰을 받고 아버지와 병원을 나서려니 어디선가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가 났다. 냄새의 근원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붕어빵이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해서 아버지는 내가 추워할세라 얼른 차로 데려가려는데, 나는 고소한 냄새의 진원지인 그 포장마차에 뜨겁게 시선을 고정하며 미적미적 걸음을 못 뗐더랬다.


차에 타자마자 아버지는 얘가 아파서 이러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에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며 내게 물어보셨다. 내가 “우웅, 있어” 하려니까, 다시 아버지는 “피자? 돈가스?” 하고 되물으셨다. 아, 그 맛있는 음식들을 뒤로하고 내가 했던 대답은 “붕어빵”이었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피식- 하는 웃음.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하는 내 말에 웃으시며 “그래” 하고 대답만 하시고는 집을 향해 차를 돌리셨다. 어렸을 때였는데도 나는 ‘우이씨,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 하고 속으로 투덜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콧물을 쿨쩍거리며 일어나니 머리맡에 붕어빵이 든 종이 봉투가 놓여있었다. 온통 눅눅하고 봉투에 기름이 배어나온 붕어빵이었지만, 전기장판 덕에 온기가 남아있었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우물우물 먹었던 그 미지근하고 말랑한 붕어빵은 바삭하고 뜨끈한 붕어빵만큼이나 맛있었다. 아직도 그 맛과 식감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투둑투둑,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때를 떠올리려니 내 기억 속의 아버지처럼 피식- 하고 웃음이 터진다. 그때의 나도 아버지도 지금 생각하니 귀엽게 느껴진다. 내가 눈을 떼지 못했던 그 포장마차를 아버지는 못 보셨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아픈 나에게 깜짝 선물을 주고 싶으셨던 걸까.


아버지가 어떤 마음에서 잠든 내 머리맡에 붕어빵이 든 봉투를 놓아두셨는지는 몰라도, 그때의 붕어빵 덕분에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바삭하고 고소한 빈대떡보다도 붕어빵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눅눅하면서도 미지근한 붕어빵이.


빗소리를 들으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또 다른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군복무를 하던 때의 일이다. 한창 잡일을 하느라 바빴던 2011년 1월 이병 막내 시절, 선임병 2명과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하던 와중에 발가락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추운 날씨에 쓰레기 압축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을 디디고 기계를 살펴보고 있을 때, 같이 작업하던 선임병이 작동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그대로 발이 깔려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찢어지고 세 번째 발가락이 절단됐다. 피가 많이 나는 모습에 놀란 선임병들은 바로 나를 곧바로 들쳐 업고 의무실로 달려갔다.


의무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즉시 군병원으로 후송된 나는 바로 접합 수술을 받고 입원하게 됐다. 병원으로 실려오기 전, 선임병들과 중대장님에게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집에는 알리지 말아달라"라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집에 연락이 간 것이다.


아버지는 뒷짐을 진 채 미간을 살짝 찡그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없이 놀란 내 얼굴과 붕대를 감은 발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셨다. 얼마 간의 정적이 흐른 후 아버지는 "괜찮냐, 많이 아팠겠네" 하시고는 크게 한숨을 쉬셨다. 그러더니 뒤춤에서 스윽,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붕어빵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후끈하고 바삭한 붕어빵이었다. 병원 바로 앞에 포장마차가 있어서, 내 생각이 나서 사 오셨다고 했다. 입대하던 날 건강히 전역하라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아버지의 그 덤덤한 얼굴과 그 순간 붕어빵 봉투를 내밀며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는 아버지의 얼굴이 겹쳤다.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집에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 마음 아프기도 했다.


약 3개월 여의 입원 기간 동안 아버지는 숱하게도 많이 면회를 오셨다. 지낼만 하냐, 축구는 다시 할 수 있대냐, 퇴원은 언제냐 물어보시던 그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첫 면회에 가져오셨던 그 붕어빵의 훈훈함과 달큰한 향내가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우우웅, 하고 핸드폰이 울린다. 아부지가 메시지를 보내셨다. ‘밥 잘 챙겨먹어라, 돈 넣었으니 고기도 사 먹고’ 하고. 놀란 마음에 은행 앱을 실행해 계좌를 보니 정말 얼마 간의 돈이 입금돼 있었다.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운 이 기분.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아버지에게 홍역에 걸려 콧물을 질질 흘리던 코흘리개 아들인 것일까.


집에 거의 다 도착했겠다, 나는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하고 답신을 보낸다. ‘그래’ 하는 아부지의 답신이 왔다. 바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에게 "다 큰 아들내미한테 무슨 용돈을 주신당가?" 하는 능청을 떨어 본다. 집에 오는 열차 안에서 아부지에게 느꼈던 민망한 기분은 간 데 없이 스스로 만족스러운 너스레다.


우리 집의 무뚝뚝한 '그래' 아저씨, 아버지는 살짝 허허 웃으시며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먹어, 시간 나면 집에 좀 오고" 하신다. "감사해요, 돈 잘 쓸게요. 조만간 얼굴 뵈러 갈게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집으로 오며 떠올렸던 그 때의 기억을, 아버지 역시 잘 기억하고 계실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괜스레 흐뭇한 마음이 인다.


형체도 없이 계좌이체로 받은 그 돈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느낌에서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 아부지가 머리맡에 놓은 그 눅눅한 붕어빵의 감촉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본가의 현관문을 활짝 열면 느껴지는 집 안의 훈훈함이 새삼 그립다. 후덥지근한 비가 지나간 뒤 다가올 내일 하루는, 아버지의 온기만큼이나 따뜻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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