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by Minchoonsam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던 시기는 가뜩이나 많은 새치가 한층 더 활발히 돋아났던 시기였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포트폴리오와 경력기술서를 얼마나 수정하고, 또 입사지원 버튼을 얼마나 눌렀을까? 처음에는 하루 동안 지원서를 얼마나 넣는지 일일이 헤아렸다. 하지만 결국 합격 소식이 아니라면 지원서 넣는 횟수는 다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그만두었다.


사용하는 표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쓰며 문장을 다듬고 긴장하던 모습은 어느새 무표정으로 거침없이 타자를 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지원 기업마다 열정을 가지고 정보를 찾아보던 모습은 기계적으로 회사 이름을 바꿔 넣으며 입사지원서를 남발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허무함은 덤으로 주어졌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지만 '나 하나쯤 뽑아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어린 마음으로 취업 준비에 열을 올렸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불합격이었다. 이 정도면 사실 무척 정중한 편이었으며 아예 무응답으로 답변(?)하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공을 들이고 한껏 힘을 줘도 합격 확률이 극명히 낮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밀려왔던 그 오묘한 감정이란.


입사지원서 제출 후 수시로 들여다보는 개인 이메일 계정에 새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뜨면 그만큼 긴장되고 설렐 수가 없었다. 취업하면 왕 돈까스 마음껏 사 먹어야지, 오래된 컴퓨터도 바꿔야지 하는 들뜬 마음으로 확인하면 "아쉽게도 이번에는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수신함에 꽂혀 있었다. '귀하'라고 나를 높여서 말해주는데도 불쾌한 경우라니 참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아쉽기는 한 걸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기 객관화가 참 잘 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어떤 것을 잘하며, 무엇에 자신이 있고 또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렇지만 잇따른 불합격 통보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니, 없어졌다. 자기 확신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다지도 효용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하는 나약함이 속내에서 스멀스멀 나를 잠식했다.



본인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막상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니 시야가 무척 좁아졌다. 응당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맞건만, 자꾸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 혹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만 바라보게 됐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은 무엇이며, 어떻게 앞날을 그려 갈 것인지보다 빨리 돈을 다시 벌고 싶다는 조바심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마스크처럼 호흡을 옥죄었다.


생각이 이렇다 보니 마음 한켠에는 늘 불안이 꿈틀거렸다. 자기계발서나 유튜브에서는 꿈을 크게 가지라고, 높게 바라보라고 말하지만 막상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을 때에는 그 말들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높고 큰 꿈’은 허공에 떠 있는 구름 조각 같았고,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았다. 현실의 발판이 사라진 채로 미래를 그리려니 아무리 밝은 청사진이라도 무게감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조급함은 오히려 내 시야를 더 작고 현실적인 것들로만 좁혀 갔다.


언제부터였을까?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따라 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무 살에는 대학, 서른 즈음에는 안정된 직장, 그 즈음에는 결혼까지—누구도 직접 강요하지 않지만 뚜렷한 도식이 있었다. 마치 그 기준선 위에 올라타 있어야만 정상인 것처럼, 은연중에 그 선은 나를 옥죄었다. 조금만 벗어나도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불안했고, 괜스레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됐다.


나는 불합격 메일을 받을 때마다 단순히 한 번의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보다는 ‘내 나이에 나는 왜 이 모양인가’라는 자조적 질문 앞에 더 크게 흔들렸다. 그 아무도 내게 가져다 대지 않는 비교의 잣대가 자존감을 압박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이정표와, 그 이정표에 맞게 제때 기준선에 올라타지 못한 나 자신을 동시에 원망하는 꼴이었다. 아, 결국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꼴이란.



지금보다 파릇했던 시절의 나는 “좋은 회사에서 편하게 좋은 일 하며 오래 다니는 것이 최고”라는 웃어른의 말씀에 콧방귀를 뀌곤 했다. 어떤 일을 ‘좋은 일’이라 부르고, 또 어떤 일을 ‘안 좋은 일’이라 낮춰 부르는 그 기준이 애초에 납득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고, 잘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 역시 흔한 잔소리로만 들렸다.


스물여섯 무렵, 나는 커피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결심 하나로 잘 나가던 기자 일을 그만두고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커피의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에 학원에서 자격증을 따며 공부했다. 꼭 하고 싶고 좋아하는 분야가 생겼다는 사실에 열의를 다하다 보니, 평생 따를 은사를 만나고 소중한 인연도 얻었다. 덕분에 현장 경험이 짧았음에도 운 좋게 매니저 자리까지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관절 통증과 족저근막염으로 몸은 점점 아파왔고, 진상 고객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도 지쳐 갔다. 무엇보다 커피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굳건했지만, 좋아하는 만큼 실력이나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남들 쉴 때 일한다’는 자격지심도 크게 작용했다. 결국 커피를 시작한 지 2년쯤 지나, 포터필터를 내려놓고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해야 한다”는 말의 무게를 몸소 느낀 경험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계속 이어 가려면, 그만큼의 실력과 열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았다. 이후 나는 오래 버틸 수 있고, 편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비교적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났다. 결국 ‘사회가 말하는 좋은 일’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춘 셈이었다.



나는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을 믿었고, 지금도 그 믿음이 크게 흔들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과 일을 서열화하는 우리네 문화는 아주 명확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괴리 속에서 나는 주눅이 든다. 사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도, 안정적인 길을 택해도 결국 세속적인 기준 위에 내 삶을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모양새로 살고 있으니.


결국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감사하게도 전에 다니던 회사의 부름을 받았다. 간사하게도 다시 소속이 생긴 지금은 앞선 고민과 생각이 잠시 사그라졌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업무를 수행하고, 월급을 받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나를 안심시킨다. 그야말로 '간사한 안도'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안정은 곧 망각을 동반하는 듯하다. 한때 머리 가득 들어찬 불안과 질문들은 다시금 깊은 서랍 속에 감춰졌다. 일자리라는 소속감이 주는 힘은 그러하고, 그 무게에 쉽게 안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이 심리적 편안함이 언제 다시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여전히 잔잔하게 남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불안과 자격지심을 경계하며 지내고 있다. 어떤 날은 남의 시선과 기준을 신경 쓰지 말자 다짐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그 잣대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 모순 속에서 흔들리는 것이 지금의 나다. 조금씩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완벽한 기준을 세우지 못해도, 내 앞에 놓인 하루의 무게를 인정하고 작은 의미를 붙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엔 대단치 않은 일이라 해도, 내가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벌어 사 마시는 커피, 든든히 배를 채워 줄 식사, 그리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부터 감사한 요즘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바라보고 정해 놓은 기준선이 아니라, 내가 어떤 순간을 알맹이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껍데기만 요란한 세상 속에서도 내 알맹이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아직은 서툴고 불완전하더라도, 그 알맹이가 모여 언젠가 내 삶의 모양새를 이뤄 주리라 믿고 싶다. 우선은 지금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