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으레 따라붙는 숙명 같은 것이라지만, 요즘의 나는 이러한 숙명이 유독 무겁다. 나이가 한 살 더 늘어난 탓인지 모르겠지만 피로감이 줄지 않고 계속 누적되는 것만 같다. '일-집-일-집' 순환의 연속에 살고 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도 자리에 남아 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오늘도 이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곱씹어 보게 됐다. 삶이라는 것은 '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생각.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한다는 말에 '만'이라는 단 한 글자가 더해졌을 뿐인데, 그 무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선택처럼 보이던 일들이 어느새 의무가 되고, 의무는 곧 벗어나기 힘든 굴레가 된다. 요즘 들어 그 굴레의 감각이 유난히 선명해졌다.
올해부터 회사 안의 내 자리는 창가 쪽이다. 일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리면 창밖 풍경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강아지와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 가방을 메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학생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스쳐 지나간다.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라, 낯설고 생소하다.
이상하게도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어떤 고민을 안고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혹시 저들 역시 나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무언가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한가로워 보여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되짚어 보면 난 꽤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하루 동안 배운 내용을 쪽지시험으로 통과해야만 집에 갈 수 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틀린 문제 하나 당 손바닥 한 대씩 맞기도 하고. 그것이 싫어 수업 시간마다 악착같이 외우고 고사리같은 손을 쥐었다 펴가며 산수 계산을 했던 그 때의 내가 떠오른다. 나만 교실에 있고 친구들은 집에 가는 그 느낌이 참 싫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에 이어진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숙제와 수행평가, 과제를 해내야만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점수를 받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스물 한 살에 군 복무를 위해 입대했던 무렵도 떠오른다. 입대 후 전역까지 약 1년 10개월을 가족들과 떨어져 시커먼 장정들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결국 해야 하거나 통과하지 않으면 멈춰 서게 되는 구조는 늘 비슷했다.
지금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달 내야만 하는 월세가 있고, 회사에서 해내야만 하는 업무가 있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고 난 후 '보상'을 체감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문턱이 훨씬 높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예전에는 숙제를 끝내고 나면 방송국에서 만화가 나오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게 아니면 게임을 켜 두어 시간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히 보상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머리가 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어서일까. 무엇 하나 예전처럼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은 여전히 많은데, 그에 비례하는 만족감은 점점 무뎌진 느낌이다. 하루를 버티듯 살아내고, 짧은 주말을 유영하고 또 다시 일상으로 다이빙한다.
최근에 자려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어디인지 모를 콘텐츠에서 “목표나 꿈이 물질이 되는 건 참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유명 연예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나는 꼭 나중에 비싼 차를 타고 다닌다"라는 목표 하나로 살아가다가, 막상 그 차를 구입하게 되어 목표를 이뤄내면 이루 말 할 수 없는 허무함이 찾아 온다는 말이었다.
내게는 차를 살 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없어 언감생심 같은 이야기였지만, 묘하게 공감이 갔다. 이번 달 고생했으니 월급 받으면 이거 하나는 사야지 하고 마음먹고, 막상 손에 넣고 나면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한 일주일은 애지중지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막 다루게 된다. 잠깐의 만족이 지나고 나면 다시 해야만 하는 일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그렇게 또 덤덤해진다.
물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면, 나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봤지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거창한 꿈이나 분명한 목표를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무엇을 이루거나 갖고 싶은지보다, 내가 어떤 순간에 좋고 행복함을 느끼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생각해 보니 의외로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좋고, 행복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러면 되지' 하는 마음에서 오는 기분들. 일하는 공간에서 굳이 안 해도 될 농담을 던지고,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순간.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여유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 그 순간만큼은 '해야만 하는 삶'의 무게가 잠시 옅어진다. 철학이란 것은 정말 어렵고 하나도 모르는 영역이지만, 이쯤 되면 꽤 철학적인 답을 얻은 셈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거창한 보상이 아니더라도, 이런 주변의 소소함과 소중함에 조금 더 눈을 뜨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해야만 하는 일들 사이에서, 내가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스스로 놓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