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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oonsam Dec 18. 2022

직장인은 사람인보다 카페인

내일의 이직보다 오늘의 커피를

고심 끝에 운율을 넣어 본 제목,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제목을 짓고 싶었다. 카페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업무 밀집 지역, 젖과 꿀은 아닐지라도 커피는 흐를지니. 적어도 나는 '사람인 앱'보다 '바나프레소 앱'을 더 자주 켜는 듯싶다. 여의도나 강남, 구로 디지털단지 등 서울의 주요 업무 지역은 물론 전국, 아니 전 세계 모든 직장인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일의 이직보다 오늘의 카페인이 중요한 그런 삶. 당장 커피를 수혈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피로에 감염된 좀비로 변할지 모른다. 비몽사몽 아침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들고 나와 빈 속에 때려부으면 정신이 그나마 돌아온다. 아침 끼니는 걸러도 카페라테든 아메리카노든 커피는 거르기가 무척 힘들다.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카페에 들르지 못하면 탕비실에서 캡슐 커피나 믹스 커피라도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 중독이라고 해도 유구무언이다.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달까. 그간 나의 나날들을 되돌아 보니, 연차로 쉰 날을 제외하면 하루 중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은 없었다. 최소 한 잔이라도 꼭 마신 듯하다. 그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커피 한 손에 꼭 쥐어들고 꽁꽁 언 손으로 회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곤 했다. 동장군도 막을 수 없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의 의지.

호달달 떨면서도 아이스 카페라테를 쥐고 행복해하던 내가 웃겨서 찍어둔 사진
바나프레소에서 커피를 받으면 항상 이렇게 운세를 보곤 했다. 그리고 난 정말 로또를 기대했지만.. ^^

언제인가 어느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구직을 할 때에는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있으면 그렇게 여유롭고 멋져 보였는데,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니 그 커피가 살기 위해 꼭 마셔야 하는 생명수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글. 참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다. 한 달치 월급을 위해 커피에 의존하며 버텨내는 그 비애라니. 물론 커피를 입에 대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니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대다수의 월급러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도 커피는 생명수라 생각하고 있다. 카페인이 피에 녹아들어야 하루의 시작이 이뤄진다. 뇌에 윤활유를 부은 듯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카페인 의존증이라도 걸리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하는 마음이다. 하루 종일 커피만 마시는 것도 아닌데 뭐. 끼니 잘 챙겨 먹으며 마시는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 가끔 이런 걱정이 크게 들때면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오트밀 라테에 샷을 추가해 마시곤 한다. 껄껄.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하면 이렇게 스타벅스에서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점심 시간에 즐기는 커피는 생명수가 아닌 '쉼표'가 되어 주기도 한다. 회사 근처에 커피나 디저트가 맛있는 카페들을 물색해 두었다가 잠깐 방문해 여유를 즐기곤 한다. 문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점심을 먹고 앞서 말한 카페에 가면 이미 만석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럴 때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커피를 포장해서 일터로 돌아간다. 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놓친 기분이지만, 점심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카페 입성에 성공하면 무척 기쁜 마음으로 미리 생각해 둔 메뉴를 잔뜩 주문한다. 이미 뱃속에는 점심밥이 가득 들어차있지만 디저트가 들어가는 배는 다르니까. 구움과자부터 각종 빵, 그리고 케익까지 주문한다. 함께하는 점심 메이트가 있다면 그들의 취향도 존중해준다. 무엇이 됐든 그저 점심의 행복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달달한 것들로 혈당을 잔뜩 올려 두면 오후가 그렇게 활기찰 수 없다.

한때 무척 애정했던 신논현역 근처 '로우어가든'. 여기는 예쁜 꽃들도 판다
학동역 언덕배기에 있는 '이디야 커피랩'. 커피도 맛있지만 빵도 일품이다
뭐니뭐니해도 로우어가든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점심시간에 가끔 갔던 역삼의 '블루보틀'. 다 좋은데 너무 적고 비싸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내일 출근을 하기가 싫어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가 결국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그런 마음과 비슷하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엇 하나라도 끼워 넣고 싶은 마음. 그래야 숨을 쉬는 느낌이 든다. 바쁜 하루 중에 점심 카페라는 쉼표하나 툭 그려 넣는 심정으로 예쁜 카페를 찾아 다니곤 한다. 카페에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이나 창 밖의 사람들을 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을 가지면, 의외로 무척이나 마음이 차분해진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오만가지 사색을 하게 된다. "왜 사람은 일을 해야만 할까"부터 "늙으면 뭐 먹고 살지" 하는 생각은 물론, 지나가는 이들을 보며 저들의 하루는 어떨지 걱정도 한다(내 목구멍이 포도청이지만). 이러한 나의 고민은 언제나 '일과 삶의 비중'으로 귀결된다. 그 중간이라는 것은 없을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다지도 간사한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삶의 비중이 '일'로 치우치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편하게 놀거나 쉬고픈 마음이 일고, '쉼'에 치우치면 일을 하고 싶어진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에는 백수 시절을 그리워하고, 백수일 때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무엇이든 적당해야 좋다지만 중간이 없다. 특히 내가 그렇다. 나는 전생에 뽀로로였나보다. 일을 할 때든 쉴 때든 언제나 노는 게 제일 좋은 것을 보니.

퇴근 후에 왕왕 가곤 했던 역삼의 '지오바니'. 하루 동안 이야기도 나누고 힐링도 하고.

저녁 시간의 커피는 일상의 '윤활제'가 되어 준다. 강남에 있는 회사를 다닐 때, 회사 근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퇴근 후 식사를 하고 괜찮은 카페를 찾아갔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한시라도 빨리 회사 근처를 벗어나야 하겠지만, 나는 도리어 회사 근처에 머물렀다. 퇴근 후 어딘가로 움직이기에는 시간이 한정적이기도 했고,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더러 있기도 해서 그 곳을 찾아가 아늑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퇴근 후 카페에 앉아 고객사나 내년 계획들과 관련된 키워드로 머리가 복잡한 하루를 정리하던 그 시간들은 참 빛과 소금같은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의 삶은 빚과 송금일지라도, 저녁 시간에 잠깐 누군가와 커피를 홀짝이는 일은 훌륭한 활력소가 됐다. 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업무의 일상을 버티게 하는 그런 활력소.

역삼과 삼성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테라로사'. 피칸 파이 먹으러 자주 가곤 했다
테라로사만의 이 구도가 참 좋아서, 방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따뜻한 카페라테에 달달한 빵만 있다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살살 녹기 마련

이튿날 출근을 생각한다면 저녁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자중해야 하겠지만, 직장인의 삶에서 커피란 시간을 불문하고 필연적인 존재다. 하루 동안의 피곤함을 머금은 상태에서 먹는 달달한 빵, 그리고 빵과 함께 마시는 따뜻한 라테나 차가운 아메리카노는 늦은 저녁이라도 참을 수 없다. 함께하는 사람과 야금야금 사이 좋게 빵을 잘라 먹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게 된다.


삶의 휴식처가 되어 주는 차(茶), 그 중에는 홍차와 녹차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나는 커피의 매력이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는 생명수였던 것이, 점심 시간에는 쉼표가 되었다가, 또 밤에는 일상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참 기특하기 그지없다. 단순 기호식품을 넘어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따금 내 주변 동료들, 혹은 직장에 다니는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당장 내일의 이직 걱정보다 오늘의 카페인이 더 중요하다고. 건강에 좋지는 않으니 그 양을 줄이긴 해야겠지만, 내 일상에 스며든 커피를 끊을 일은 아마 죽기 전까지 없을 듯싶다. 이번 주말에도 내 주변 고샅고샅 숨어 있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즐겨 볼 생각이다. 아늑한 카페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 그 자체의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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