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징인 사자상, 고대 중국에서 왔다

by 마르코 루시

베니스 산 마르코 광장을 장식하는 날개 달린 청동 사자는 오랫동안 유럽 예술의 상징이었다. 수세기 동안 그것은 공화국의 힘과 신앙의 수호자로 추앙받아왔다. 그러나 최신 연구는 이 상징물의 기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연구팀은 청동 합금을 정밀 분석해, 이 사자가 사실상 중국 당나라 시대(618~907년)의 유물임을 밝혀낸 것이다.


분석은 과학적이다. 금속을 구성하는 납 동위원소의 비율이 중국 양쯔강 하류 광산의 것과 일치했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이 사자가 헬레니즘 세계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제 그 가설은 힘을 잃었다. 과학적 추적은 이 사자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른 실크로드의 산물임을 입증한다. 양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자의 주둥이, 갈기, 귀에는 당나라 무덤을 지키던 수호신 진묘수(鎭墓獸)의 특징이 남아 있다. 원래 뿔이 달렸을 가능성이 높으나, 베네치아에 도착한 후 장인들이 뿔을 제거하고 귀를 짧게 다듬어 기독교 상징에 걸맞은 새로운 얼굴로 바꾸었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장례 수호신은 성 마르코의 사도로 재탄생했다.


이 사자가 어떻게 베니스에 왔는지에 대해서, 학자들은 마르코 폴로 가문을 주목한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13세기 쿠빌라이 칸의 수도를 방문했고, 귀환길에 귀중한 유물을 다수 가져왔다. 사자상이 그때 함께 운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295년 마르코 폴로가 귀국했을 때 이미 이 동상은 산 마르코 광장의 기둥 위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크로드가 단순히 비단과 향신료의 길이 아니라, 상징과 예술을 이동시킨 통로였음을 이 동상은 웅변한다. 이 발견의 파장은 단순한 기원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유럽 중심적 문화 서술에 균열을 내며, 베니스의 상징조차 아시아와의 교류 위에 서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는 "문명은 언제나 혼혈적이며, 문화는 항상 이동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다시 확인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이 동상은 누구의 유산인가? 베니스의 대표 상징인가, 중국 당대 장례 문화의 잔재인가, 아니면 실크로드가 낳은 공동의 유산인가. 문화재 반환 논의가 격렬한 유럽에서, 이 질문은 가볍지 않다. 파르테논 조각의 귀환을 요구하는 그리스, 베닌 브론즈를 돌려받으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목소리와 나란히, 베니스의 사자는 새로운 문화외교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이번 발견은 미묘하다. 중국은 최근 "일대일로(Belt and Road)" 구상 속에서 과거 실크로드의 문화 교류를 현대적 명분으로 활용해 왔다. 만약 베니스의 대표 상징이 실제로 중국에서 건너온 유물이라면, 이는 중국이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확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상징이 된다. 반면, 유럽은 자국 정체성의 아이콘이 동아시아 기원임을 인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다. 학문적 발견이 외교적 긴장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예술은 국경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이동하고,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베니스의 사자는 그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뿔 달린 당나라의 진묘수가 지중해 도시국가의 수호자로 바뀌었듯, 문화는 끊임없는 교차와 번역 속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세계화를 20세기의 산물로 여긴다. 그러나 산 마르코 광장의 사자는 그것이 오히려 고대부터 이어진 전통임을 증언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대륙을 건너 문화를 교환해 왔다. 베니스의 사자는 단순한 청동상이 아니다. 그것은 실크로드의 메아리이며, 동서 문명의 만남이 돌 위에 새겨진 기록이다. 이 사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베니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광장을 스치는 관광객들은 여전히 사자의 날개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사자의 역사는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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