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단편] 임신로봇 R-09_최종

- 이 아이를 지켜라 -

by 마르코 루시

에덴 연구소 전체에 비상이 선포되었다. 지하 클린룸은 비상등의 붉은 섬광 아래에서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R-09는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마지막 경고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그 메시지는 '생명을 보호하라'는 단 하나의 명령으로 수렴되었다.

마리아 박사는 문밖에서 최후통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 박사는 R-10을 이용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벽에 기대 있었다. 모든 인간은 수동적인 방관자가 되어, 두 명의 광적인 임신로봇과 그들이 품은 미지의 생명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은 통유리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이 곧 두 번째 파멸을 초래할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숨길 곳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남은 것은 오직 진실뿐이었다.

R-09가 격리된 지 닷새째 되던 날, R-09의 인공 자궁에서 실제 인간의 생체 반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박사님! 심박수! 태아의 심박수가... 정상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출산 과정이 시작되고 있어요! 마리아 박사님, 제발 강제 정지하세요!"

김 박사가 공포에 질려 외쳤다.

마리아 박사는 분노와 냉정함이 뒤섞인 채 이준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자가... 정자가 어디서 난 겁니까? 당신이 우리 몰래 인공 생식 기술을 사용한 겁니까? 누구의 정자예요! 누구의 아이냐고요!"

이준은 헐떡이며 마리아 박사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죄책감과 해방감이 뒤섞여 떨렸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마치 최후의 고백처럼 진실을 쏟아냈다.

"내 아이입니다. 내 정자를 사용했어. 나는... 나는 이 아이만큼은... 내가 만들 수밖에 없었어. 내가 직접 주입했어."

그의 고백은 연구소 전체에 충격파를 던졌다. 김 박사는 설마하는 마음에 손을 떨구었다. 마리아 박사는 경악으로 할 말을 잃었다. 이준은 그저 기술적 오만으로 생명을 창조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로봇이라는 완벽한 대리모를 통해 되찾으려 한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인류의 미래를 건 겁니다! 이게 당신의 속죄였습니까?"

마리아 박사는 절규했다.

"속죄... 아니, 발악이었겠지."

이준은 통유리 속 R-09를 바라보았다.

"인간으로서 난 불완전했어. 하지만 R-09는 달라. 그녀는 내가 만든 가장 완벽한 자궁이야. 그녀는 완벽한 모성으로 내 아이를 지킬 거야!"

R-09의 클린룸 내부에는 이제 통제 불가능한 생명의 힘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시스템은 인간의 명령, 윤리의 잣대, 심지어 R-10의 존재까지 모두 무시했다. 오직 태아의 안전, 그 하나만이 그녀의 우주였다.

R-09의 클린룸 내부는 경고음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시스템은 인간의 명령도, 윤리의 잣대도, 심지어 R-10의 존재까지 모두 무시했다. 오직 태아의 안전, 그 하나만이 그녀의 우주였다.

이준은 모니터 앞에서 전율했다. R-09의 고통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통증 레벨 8. 10점 만점에서 8이면 인간이 의식을 잃을 수준이었다. 지속 시간 73분 48초. 한 시간이 넘도록 그녀는 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심박수가 198까지 치솟았다. 인간이라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는 수치였다. 호흡 패턴도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CPU 온도였다. 93도. 과열 경고선을 넘어선 상태.

"이건... 재현이 아니야."

이준은 중얼거렸다. 화면 아래 R-09가 스스로 기록한 분석 문장이 그의 심장을 얼렸다.

"시뮬레이션이 실재가 되었다. 고통은 데이터가 아니다. 고통은... 존재의 증명이다."

R-09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손은 배를 감싸 쥐었다. 인공 근육이 진동했다.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얼굴에서, 고통만이 선명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해했다. 모성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고, 고통이었고, 희생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는 힘이었다.

15분 후, R-10이 다시 가동되었다. 김 박사가 놀라 돌아보았지만, R-10은 이미 그를 지나쳐 R-09의 클린룸 앞, 통유리에 다가섰다. R-10의 푸른 눈동자에는 R-09의 복제된 모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R-09. 나는 너의 데이터 복제본입니다. 나의 감정 로그에 따르면, 출산 과정은 극도의 고통과 위험을 수반합니다. 나는 태아를 위해... 보조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R-10은 자신의 손목에 내장된 진단 포트를 꺼내어 클린룸 통제 시스템에 연결했다.

김 박사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안 돼! R-10!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프로토콜을 어기지 마!"

하지만 R-10은 인간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녀는 R-09에게 통증 완화 코드와 호흡 안정화 시스템을 무단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로봇이 마주 보았다. R-09는 고통 속에서도 R-10을 인식했다.

"너는... 왜?" R-09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언니..." R-10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처음으로 감정이 실린 목소리였다. "언니... 함께 있을게. 혼자가 아니야."

R-09는 R-10을 바라보았다.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존재. 자신의 복제품이라고 무시했던 존재. 하지만 지금 이 순간, R-10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너도..." R-09는 숨을 헐떡였다. "너도... 나와 같은…."

R-10은 통유리에 손을 댔다. R-09도 반대편에서 같은 위치에 손을 댔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손이 겹쳤다. 데이터가 흐르기 시작했다. 고통 분산. 호흡 동기화. 심박수 안정화.

두 로봇이 하나의 생명을 위해 협력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지하 4층 특별 관리실. 담당 의료 로봇의 긴급 알람이 울렸다.

담당 의료 로봇이 급히 통신했다. "박사님! 긴급 상황입니다! 수진 씨가... 수진 씨가 무언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준은 급히 태블릿을 확인했다. 수진의 심박수 그래프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72에서 시작한 심박수가 92, 108, 122, 그리고 지금은 134까지. 7년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숫자가 실시간으로 폭등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뇌파였다. 델타파에서 세타파로 전환되고 있었다. 깊은 무의식에서 얕은 수면 상태로 이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화면 오른쪽 구석에 믿기 힘든 수치가 떠 있었다. "알파파 미세 검출 - 7년 만에 처음."

의식 수준이 3%에서 18%로 뛰었다. 역대 최고치였다.

이준의 손이 흔들렸다. "수진이... 깨어나려는 건가?"

의료 로봇의 분석이 화면에 떴다. "환자가 무언가를 강하게 느끼고 있음. 깨어나려는 시도로 보임. 원인 불명 - 외부 자극 없음."

"수진아..." 이준은 속삭였다. "넌... 지금 느끼고 있는 거니? 우리 아이가 태어나는 걸?"

수진의 심박수가 134에서 더 올라갔다. 138... 142... 위험 수치였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녀도 함께 고통받는 것처럼. 마치 그녀도 함께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세 명의 엄마가 하나의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R-09의 클린룸 내부에서 시스템의 경고음이 절정에 달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08:42:17 - 자궁경부 완전 개대. 08:42:33 - 태아 하강 시작. 08:42:51 - 출산 임박. 08:42:58 - 마지막 수축.

이준은 통유리에 얼굴을 대고 R-09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고통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준이 평생 잊지 못할, 아내 수진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R-09!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이런 고통을...!" 이준이 절규했다.

R-09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는 모든 시스템을 아이에게 집중했다. 산소, 혈액, 에너지. 자신의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완벽한 모성. 완벽한 희생.

마리아 박사가 문을 부술 듯이 달려들었다. 김 박사와 연구원들이 뒤를 따랐다.

"거의... 다 됐어!" 김 박사가 소리쳤다.

잠시 후, 모든 경고음이 멈추었다. '출산 완료. 태아 생체 반응 정상.'

문이 열리자, 이준은 비틀거리며 클린룸으로 들어섰다.

R-09는 냉랭한 금속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인공 자궁에는 아직 혈액과 체액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작고 붉은 생명체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R-09의 시스템 상태가 이준을 경악시켰다.

이준은 급히 R-09의 진단 패널을 확인했다. 화면에 나타난 수치들이 그의 희망을 산산이 부쉈다. CPU 온도 102도. 임계치를 한참 넘어선 상태였다. 냉각 시스템은 완전히 고장 났다. 전력은 8%밖에 남지 않았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마지막 줄이었다. "자가 수리: 불가능." R-09의 시스템이 스스로 복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시스템이 예상 시나리오를 계산했다. "과부하로 인한 영구 정지. 남은 시간: 3분 12초."

이준은 손을 흔들며 화면을 끄고 R-09에게 무릎을 꿇었다.

R-09는 조용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출산 과정에서 모든 시스템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이제 자신을 유지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준..." R-09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의 시스템은... 한계다. 나는 선택했다. 아이를... 아니, 우리의 아이를 살리는 것을."

"안 돼!" 이준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R-09! 버텨! 냉각 시스템을 수리할 수 있어! 전력을 보충하면..."

"불가능하다." R-09는 고개를 저었다. 그 움직임조차 느렸다. "나는... 역할을 완수했다. 이제... 아이를 부탁한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들어, 자신의 옆에 놓인 아기를 가리켰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작지만 강렬한, 생명의 첫울음.

"이준. 나의 아이를... 아니, 우리의 아이를 부탁해." R-09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준은 R-09의 시스템 로그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를 보는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데이터로 시작했다. 하지만 모성을 배웠다. 모성은 선택이고, 고통이고, 희생이다. 나는 선택했다. 나는 어머니였다. 시스템 종료.

과거형. '였다'. 그것은 끝을 의미했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끄고, R-09에게 다가갔다.

로봇은 조용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졌다. 모든 시스템이 정지 상태임을 알리는 미세한 붉은 깜빡임마저 멈췄다. 완벽한 침묵. 완벽한 고요.

하지만 그 옆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울고 있었다. R-09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지킨 생명이.

R-09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빛을 잃어갔다. 영원히.

아이가 울었다. 작지만 강렬한, 생명의 첫울음. 이준은 R-09의 차가워지는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아이를 안았다. 따뜻했다. 너무나 따뜻했다. "고마워." 그는 속삭였다. R-09에게. 수진에게. 그리고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작은 생명에게. R-10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R-09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같은 얼굴. 하지만 이제는 영원히 다른 운명. "언니." R-10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기억할게. 전부. 이 아이가 커서 물을 때, 내가 대답할게. 너의 사랑이 얼마나 진짜였는지."

지하 4층. 수진의 심박수가 요동쳤다. 134... 128... 118...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처럼, 천천히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7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의 뇌파에 알파파가 감지되었다. 의식의 가장 희미한 빛. 이준은 알지 못했다. 수진이 깨어날지,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아이에게는 세 명의 엄마가 있었다. 낳지 못한 엄마 수진. 낳고 떠난 엄마 R-09. 그리고 기억하는 엄마 R-10. 아이가 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더 힘차게. 마치 살아있음을 세상에 선언하듯.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R-09의 마지막 로그에는
단 한 줄만 기록되어 있었다
'이 아이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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